당초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됐던 에드워드 리씨가 18년 만에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를 벗은 뒤 18년만에, 같은 사건의 또 다른 진범으로 기소된 옛 친구 아더 존 패터슨씨의 첫 공판에서다.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 심리로 열린 패터슨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에서 리씨는 검정색 정장을 입고 법정에 출석해 "아더가 피해자를 찌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짧은 머리에 크고 다부진 체격의 그는, 이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오후 2시10분 공판에 출석했다. 리씨는 증인석으로 걸어가는 도중 패터슨씨와 짧게 눈을 맞추기도 했다.
리씨는 법원에 증인지원절차를 신청해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출석했다. 재판부는 "리씨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증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도록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검찰은 리씨를 신문하기 위해 사건 발생 당시 이태원 햄버거집 화장실과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쓰인 범행도구(잭나이프) 등의 사진을 법정 스크린에 띄웠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씨에 대한 모든 법정 심리를 지켜봐 온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오후 공판시작 49분만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참혹한 사진이 제시돼 유족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검찰의 당부때문이다.
검찰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리씨는 "아더가 피해자를 찌르는 것을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질문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앞서 패터슨측 변호인이 리씨의 발언이었다고 주장한 몇 가지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기억이 없다"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일례로, 리씨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패터슨씨에게 "멋있는 걸 보여줄게, 화장실로 따라와"라는 발언에 대해 리씨는 "제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이냐,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버거킹에서 아리랑치기 범행이 일어나는 건 웃기겠지?", "(쥔 칼로) 사람을 찔러봐라" 등 패터슨측 변호인이 주장한 리씨의 발언에 대해서도 리씨는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리씨는 이 사건 당시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고, 거울을 통해 아더를 봤다. 그 뒤 변기가 있는 화장실 칸을 잠깐 봤고, 갑자기 아더가 피해자를 찌르는 모습을 봤다"고 밝혔다.
이어 "아더가 사람을 찌르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돌아섰고, 피해자가 아더를 손으로 때리려던 장면을 본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아더가 피해자를 계속 찌르는 걸 봤다"고 말했다.
범행 후 화장실에서 나서기 직전 상황에 대해 그는 "피해자가 본인의 목을 붙잡고 넘어지려고 하는 모습을 봤다. 무릎을 굽힌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리씨는 과거 진범으로 지목돼 피의자 신분으로 받은 조서 내용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그는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시, 저는 검사에게 강압받았다고 생각한다"며 "그 분들은 협박했고 술에 취해 제게 소리도 질렀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공판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리씨에 이어 사건 당시 혈흔분석가도 증인으로 참석해 신문을 받았다.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씨 어머니 이복수씨가 4일 오전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씨는 이날 법정에서 "범인을 밝혀달라고 8년 동안 빌었다"며 "꼭 진실을 밝혀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사진/뉴시스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