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으로 데뷔한 조승우는 이후 영화뿐 아니라 뮤지컬, 드라마를 넘나들며 줄곧 좋은 연기를 펼쳤다. 분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최근 3년간은 영화보다는 뮤지컬에 더욱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잊혀져가던 독립군 김원봉으로 분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지만 짧은 분량 탓에 그의 연기를 보고 싶어했던 이들의 갈증을 만족스러울 만큼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다시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최근 개봉한 '내부자들'을 통해서다. 조승우는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출세욕이 가득한 우장훈 검사 역을 맡았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를 만나 정의와 출세의 갈림길에 선다. 우장훈을 연기한 후 숨을 고르고 있는 조승우를 최근 서울의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특유의 솔직함이 돋보이던 조승우는 "내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조승우. 사진/쇼박스
◇삼고초려로 '내부자들' 합류
'내부자들'은 웹툰 '미생'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한겨레 오피니언 매거진 훅에 연재하던 미완결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호평이 자자했고, 이병헌, 백윤식 등 굵직한 배우들을 단숨에 캐스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누가 봐도 성공할 것만 같은 이 영화를 조승우는 세 번이나 거절했다. 우민호 감독의 삼고초려로 겨우 설득돼 영화에 합류했다. 조승우는 실제 있을 법한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배우가 아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았어요. 텍스트로 보니까 더 잔인하고 어두웠어요.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인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거부감이 생겼어요. 감독님이 이병헌이랑 언제 또 연기해보겠냐고 설득하더라고요. 감독이 오죽 원하면 배우한테 이런 말까지 할까 싶었고, 주위에서도 하도 하라고 해서 했어요."
영화는 정치·경제·언론 권력자들의 더러운 유착을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권력자들이 세상을 손바닥 뒤집듯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가지고 노는 이야기다. 그 대척점에 서서 싸우는 검사를 조승우가 연기했다. 완성도에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내부자들'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핸디캡을 깨고 300만 관객(1일 기준)을 넘어섰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할 때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정말 만족스러워요. 영화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시나리오의 구성을 완전히 뒤집어서 시간순으로 배치한 부분이나 스피디하게 편집한 부분 등이 훌륭하다고 봐요."
극중 우장훈 검사는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출세욕이 가득하다. 경찰 출신이면서 지방대 출신인 검사다 보니 자신을 이끌어줄 '빽'이 없다. 검찰 내에서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지만 승진은 늘 제자리 걸음이다. 출세를 바라는 속마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아무리 정의로운 행동을 해도 100% 애정이 가지는 않는다. 조승우는 그런 우장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해요. 우장훈이 매력적인 건 행동으로 옮긴다는 거예요. 사람이 다 이기적이잖아요. 얼마든지 리스크가 있는 부분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마련인데, 그래도 우장훈은 의식있게 행동하잖아요. 비록 출세욕을 드러내지만 행동하는 양심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꽤나 괜찮은 놈인 거 같아요."
영화 '내부자들' 조승우 스틸컷. 사진/쇼박스
◇"나는 까칠하다"고 말해왔던 이유
극중 우장훈 검사의 성격은 꽤나 까칠한 편이다. 늘 틱틱대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안상구한테 이름이 아닌 "깡패야"라고 부른다. 자신을 하대하는 안상구는 우장훈에게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한다.
우장훈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그간 조승우도 꽤 까칠한 모습을 보였다. 공식석상에서 밝은 미소보다는 무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하는 스타일이고, 원치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 대답 안 할래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과 연기하는 주위 배우들에게 욕설을 일삼는 자신의 팬들을 향해 "너희는 내 팬이 아니다"고 쓴 소리를 남긴 적도 있다. '아닌 건 아니다'고 말해왔던 그다. '클래식', '말아톤' 등의 영화에서 순수한 역할을 연기했을 때 인터뷰를 살펴보면 "나 되게 까칠한 사람이에요"라는 문장이 많다. 조승우에게 다시 실제 성격에 대해 물었다. "저 사실 되게 착해요. 까칠하다고 한 건 전략이었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간 까칠함을 내세운 것은 남들은 모르는 배우로서의 고충 때문이었다.
"저도 우장훈처럼 좀 실행하는 타입이에요. 밀어붙이는 면이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 구설수에도 오르고 그러잖아요. 예전에 일부러 '성격이 까칠한 놈'이라고 말해왔어요. 왜냐하면 너무 순수한 이미지 탓에 작품에 제한이 있어요. 영화 '타짜'할 때도 미스캐스팅이라고 했고, '지킬 앤 하이드'를 할 땐 너무 안 어울린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나에게도 사나운 면이 있다는 걸 일부러 어필했죠. 사실 성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뭉뚱그려서 까칠했다고 말한 건데, 진짜 그런 사람처럼 비춰지는 면도 있더라고요. 저 심성이 되게 고운 청년입니다. 하하."
조승우는 뉴스를 보다가 가끔씩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버린다거나 죽이려고 하는 기사나 뉴스를 보면 끓어오른다고 했다. 이 외에 정치적인 사안에 있어서도 화가 난다고 했다.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 분노를 느낀다는 조승우가 '내부자들'을 거절했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내 나라,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세상 돌아가는 게 보인다고 해야 될까요. 어떤 뉴스들을 보면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정치적인 이슈도 그렇고요. 왜 세상은 이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나 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하죠. 그러던 중에 '내부자들'은 너무 정면으로 더러운 세상을 말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생겼던 거예요."
배우 조승우. 사진/쇼박스
◇찌릿찌릿한 연애, 벌렁벌렁한 작품
올해 나이 36세인 조승우는 아직 미혼이다. 오랫동안 그와 소통해온 팬들은 이제 자식이 있는 아줌마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결혼 언제 할 거냐. 이젠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고 혼쭐을 내기도 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는 현재 연애 중이 아니라고 했다. '찌릿찌릿'한 연애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바쁘긴 한데 그래도 연애는 할 수 있으면 하죠. 그럼 공개할 수도 있고요. 아직 짝을 만나지는 못했어요. 찌릿찌릿한 연애를 하고 싶어요. 팬들이 혼을 내기도 해요. 결혼 언제할 거냐고. 결혼이 먼저가 아니라 저는 강렬한 연애를 먼저 하고 싶어요.“
이제 곧 40을 바라보는 조승우는 연기자로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출연했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등 네 편이 10주년 공연을 진행했고, 영화도 두 편이나 찍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에게 40이 오기 전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다. 꿈은 소박했다. "가슴이 벌렁벌렁한 작품을 찾는 것"이었다.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 다른 건 생각 많이 안 해요. 재밌느냐, 내가 흥미를 갖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제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다 그래요. 40이 되기 전까지 목표는 제 가슴이 벌렁벌렁한 작품을 찾는 거예요. 제가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해도 되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조승우는 개인보다는 배우로서의 삶이 더 소중한 듯했다. 인간 조승우보다는 늘 배우 조승우로서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인상이었다. 그런 조승우이지만 내년 일정이 아직은 없다. 현재 시나리오를 읽으며 작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조승우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할 다음 작품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