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재능이 가정에서 소모되지 않고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위치한 카이스트 경영대학 내에는 SK사회적기업센터가 위치해있다. SK그룹과 카이스트가 협약을 맺고 설립한 센터다. 이 곳에서 소셜벤처 윔플(WIMPLE)을 이끄는 박선하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현재 카이스트 경영대학 사회적기업가 MBA과정의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학생이자, 올 1월 설립한 윔플의 대표다.
센터 내에는 윔플의 작업공간이 마련돼 있어 박 대표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박선하 윔플 대표. 사진/윔플
◇PD에서 한 기업의 대표로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007년 <토마토TV>에 PD로 입사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카메라로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후 현장으로 나와 비영리 단체에서 취약계층 어린이들의 멘토가 되어 교육을 맡아 해왔다. 그에게 사회복지도 중요한 영역이었지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는 나눔의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된 것이 '사회적경제'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때 카이스트 경영대학의 사회적기업MBA과정을 알게 됐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계획보다 2년 가량 빨리 창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회계, 재무, 마케팅 등 경영학적 지식도 배울 수 있지만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직접 지식을 나누고 협업하는 부분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테크노,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과 조모임을 하다보면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고, 또 협업을 통해서 성과도 얻죠. 이 같은 네트워크가 큰 자산입니다. 혼자 시작했으면 3년 넘게 걸렸을 일을 사회적기업 MBA과정을 통해 1년 만에 창업을 하게 된 것이죠."
◇윔플, 여성들의 놀이터
박선하 대표가 이끄는 윔플은 '여성들의 놀이터(Women's Playground)'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윔플은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소모되지 않고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으로, 올 1월에 개인사업자로 시작해 지난달 법인을 설립했다. 윔플은 여성 가운데서도 한부모가정, 미혼모, 경력단절 여성의 자립모델을 만들기 위해 시작해 여성의 재능으로 사회적 경제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선하 대표(왼쪽 첫번째)와 함께 행복한끼를 운영하는 직원들. 사진/윔플
윔플의 식품브랜드는 '행복한끼'다. 행복한끼를 통해 주부들은 제철 음식을 가지고 직접 레시피를 개발해 자신의 요리를 판매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요리를 택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세끼를 먹는 만큼 음식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기 때문에 음식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윔플은 손맛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쿠킹클래스를 모집한다. 모집을 통해 선정된 3명은 3주간 쿠킹클래스에 속해 프로 셰프로부터 교육을 받고, 함께 레시피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친다. 쿠킹클래스에 참여한 여성은 소액의 수강료를 지불하는데 큰 부담은 없다. 3주 동안 개발한 레시피를 활용해 도시락을 판매해서 그 수익금으로 수강료를 환급해주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는 여성은 요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정시간 내에 도시락을 만들어내는 '직업으로서의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교육 기간동안 책임감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액의 수강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킹클래스를 통해 수강생들은 윔플의 시스템을 경험해 볼 수 있고, 윔플 역시 이들을 고용해 함께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현재 쿠킹클래스는 3기까지 진행됐으며, 이를 통해 3명의 요리사가 선발됐다. 윔플은 이들을 내년부터 정식 고용해 행복한끼 사업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레시피 발굴…기업의 수익과 사회적가치를 동시에
박 대표는 도시락 사업 외에 레시피 발굴 사업도 기획했다. 고용한 주부 요리사들이 직접 레시피를 발굴해 컨설팅해주는 사업이다.
현재 서울시가 진행하는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속해 레시피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신창시장 내에 있는 4개 식당에 세프가 투입돼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윔플의 레시피 사업은 수익사업이자 소상공인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도 동시에 이루고 있는 활동이다.
윔플은 브랜드와 레시피를 수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중국, 홍콩에서 한식을 판매하고 싶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재 홍콩쪽에 수출할 레시피를 개발 중에 있죠. 국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반응을 본 후 브랜드와 개발한 레시피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윔플은 이 같은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지난 4월 고용노동부 산하 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매년 진행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이로써 내년 2월까지 일정부분 사업비를 지원받게 된다.
◇"우여곡절 많은 올해…내년 전환점될 것"
기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윔플은 쿠킹클래스를 열기 이전에 청년층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팝업 레스토랑은 재료나 공간이 마련된 곳에서 사용자가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그 안에서 일정 기간동안 자신의 음식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창업을 원하지만 공간에 대한 부담이 있거나 혹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시스템인 셈이다. 하지만 팝업 레스토랑에 대한 수요는 크지 않았다.
"재료나 공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평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음식이 판매되는 것에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팝업 레스토랑을 먼저 오픈하기에 앞서 교육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죠."
올해 사업의 밑그림을 완성한 박 대표는 내년이 윔플의 전환점이 되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선주문이 있을 경우 도시락을 판매해왔지만 내년부터는 쿠킹클래스를 통해 선발한 3명을 정식으로 고용해 도시락 사업을 매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도시락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내년에 작업실 부근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 계획이다.
매년 9명을 고용할 목표도 세웠다.
"현재 선발한 주부 요리사 3명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고, 프로 세프의 도움 없이 쿠킹클래스를 통해 고용한 여성들을 통해 충분히 경쟁력있는 레시피나 도시락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 목표입니다."
박선하 대표는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대기업과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자체로 작은 기업으로서 미션을 가지고 있다"며 "'여성의 재능으로 사회적 경제를 키우는 것'이란 미션을 달성해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