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 굳건했던 일본 상사업계 '빅3'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강한 리더십과 전투적 기업문화를 앞세운 이토추 상사는 이미 지난 2012년에 스미토모를 제치고 3위로 올랐고, 내년에는 자원 투자에서 거액의 손실을 기록한 미쓰이 물산마저 끌어내려 2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토추의 경쟁력은 자원가격 하락 등 대외적인 요인에 더해 달성가능한 목표 제시, 강점분야의 강화, 일하는 방식의 혁신에 비롯됐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상사 돌풍의 핵, 이토추 상사' 보고서에서 이같은 일본 상사업계 지각변동의 배경을 분석했다.
이토추 상사는 ‘업계 1위’를 외치지 않는다. 그만큼 명확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했다. 오카후지 마사히로 사장이 취임한 2010년에는 '업계 3위'가 목표였고, 최근에는 '업계 2위'로 상향조정했다. 당시 이토추 상사는 4위였고, 3위였던 스미토모 상사를 주 경쟁상대로 지목한 것이다. 실제 2012년 이토추 상사는 3위로 도약했다.
목표를 차례로 달성하면서 자연스레 직원의 사기가 올라가고, 경영지표도 경쟁업체를 압도했다. 올해 자기자본이익률(ROE) 13.4%를 기록하면서 미쓰이(7.7%), 미쓰비시(7.5%), 마루베니(7.3%)와 2배 가까운 차이를 내고 있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도 주효했다. 이토추는 일본 중서부 지방의 섬유 상사로 출발했기 때문에 생활소비 제품 분야의 브랜드 비즈니스에 강점이 있었다. 섬유는 사양산업으로 지목돼 타 상사들은 축소하는 분야이지만, 유일하게 이토추 상사만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했다. 오히려 최근엔 ‘레스포삭(LeSportsac)’ 브랜드 인수 등 독자적 제품개발 및 판매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고 유통, 식품 등 생활소비 전반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오카후지 사장 취임이후 근무형태가 ‘아침형 근무’로 전환됐다. 회식도 1차로 끝내고 10시까지는 귀가한다는 ‘110 운동’을 도입했다. 업무는 오후 8시 이후 근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8시 출근으로 유도했다. 과거 이토추 상사 본사 건물 앞에는 저녁에 택시가 일렬로 대기하는 장관이 펼쳐졌지만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과장급 이상이 승진할 때, 현 직책 기간 중의 실적과 연동해서 무상으로 주식을 지급하는 스톡옵션(Stock Option) 제도도 도입했다. 사내 회의시간과 회의자료 두께도 대폭 줄였다. 형식을 타파하자는 오카후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급변했던 시장상황도 이토추의 대약진을 뒷받침했다.
일본 종합상사는 1990년대 이후 자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무역 중개회사에서 자원회사로 변신한다.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 강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원투자에 나섰고, 자원 가격 급등으로 큰 폭의 수익을 냈다. 서열 1위인 미쓰비시 상사는 세계 석탄 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2위인 미쓰이 물산은 철광석 생산량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특히 미쓰비시는 2011년 수익의 70%, 미쓰이는 2012년 수익의 90%를 자원 부문에서 벌어들였다. 타 상사들도 2012년까지 전체 수익 중 자원 부문의 수익비중이 50%에 육박했다.
하지만 자원가격이 급락하며 종합상사 서열에 대격변이 일어난다. 자원버블의 붕괴가 시발점이었다. 2011년 중반 이후 자원가격 하락으로 상사들의 수익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비자원 부문이 강한 이토추 상사가 부상하게 된다. 2015 회계연도에 5대 상사 모두 거액의 감손처리를 하였고, 스미토모 상사는 결국 적자를 면치 못했다. 반면 안정적이고 견실한 비자원 비즈니스를 바탕에 두고 있던 이토추 상사는 자원부문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조항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토추 상사는 사양산업으로 타 기업들이 기피하는 섬유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기 때문”이라며 “국내 상사 및 타 기업들도 자사의 강점을 지렛대 삼아 확장형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토추 상사 본사 전경. 사진/이토추 상사 홈페이지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