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학생자치의 현주소(1)

입력 : 2015-12-08 오전 9:08:10
대학가는 총학생회 선거가 한창이다.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연세대는 2016년도 총학생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과정에서 문제를 겪었다. 문제의 양상과 원인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학교 총학생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서울시립대. 사진/바람아시아
 
서울시립대는 2016년에 일할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선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11년 만에 벌어진 초유의 사태다. 또 7개 단과대학 중 단 두 곳만 학생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4개 대학은 애초에 출마한 선본이 없어 투표를 진행하지 못했고, 나머지 3개 대학은 하나의 선본만 출마해 경선 없이 찬반여부만 투표했다. 이 중 한 개 대학은 투표율 40%를 넘지 못해 투표가 무산되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피선거권과 선거권 모두를 방기한 것이다.
 
총학생회를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현재 총학생회장이 권한 대행을 하며 비대위 체제에 들어갔다. 내년 3월에 있을 보궐선거에서 총학생회장과 5개 단과대학의 학생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다.
 
이 상황에 대해 한옥규 부총학생회장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죽고 개인의 미래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사회분위기에서 학생자치가 학생들의 관심 밖이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원인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됨에 따라 내년 보궐선거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까닭에 작년과 달리 모바일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모바일 투표를 관련 업체에 의뢰하면 5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투표율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신중한 고민을 동반한 투표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고 한다.
 
시립대 조창훈 총학생회장은 서울시립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이익이나 장점이 없는 것이 학생자치가 위기를 맞이한 이유”라고 답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 시립대 재학생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재수강재도 재편 때 학교 측 안보다 학생 측 안에 가깝게 결정이 났고 학생회가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또 다른 학생은 “학생회가 나서서 해결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평소에 참여하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사진/바람아시아
 
성신여대는 총학생회에 출마한 선본의 후보가 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을 겪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학칙(학교운영규칙)에 의거해 후보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당 학칙은 학칙 제 59조의 2중 2조항으로 학생 임원진은 ‘품행이 방정하고’‘전체학기 평균성적이 C0급 이상인 자’여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독 출마한 선본 ‘WE CAN 성신’의 박유림 후보의 성적이 기준에 미달했다.
 
선본과 다수의 성신여대생들은 중앙선관위의 후보 자격 박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노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논점이 있다.
 
첫째는 학칙의 효력여부이다. 총학생회 선거는 학교본부가 규정한 학칙이 아니라 학생들이 정한 세칙(선거시행세부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총학생회는 학교본부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꾸리는 학생자치의 영역인 만큼 학칙을 근거로 후보자를 박탈할 수 없다는 논리다.
 
둘째는 박탈의 시기다. 중앙선관위는 후보등록기간과 유세기간까지 아무런 언질이 없다가 투표 둘째 날이 돼서야 박탈사실을 ‘통보’했다. 후보의 자격이 부적합하다는 주장을 타당성여부를 떠나서 왜 투표기간이 돼서야 해당 사실 파악하고 자격을 박탈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성신여대 휴학생은 “선본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원치 않은 중앙선관위가 박탈을 위해 꼬투리를 잡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셋째는 중앙선관위의 박탈결정 과정이다. 투표가 한창이던 12월 1일 오후 4시 15분 육난영 중앙선관위장은 “급하게 회의를 열어야 할 것 같다며” 6시까지 회의에 참석할 것을 중앙선관위원들에게 요구했다. 이에 몇몇 선관위원은 어떤 안건인지 물어봤으나 육난영 중앙선관위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6시 30분 중앙선관위원 11명 중 6명만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고 18분 만에 후보자박탈과 투표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단순 징계를 주는 데 5시간에 걸쳐 고민한 것과 비교해 이번 박탈결정이 ‘날치기’ 내지 졸속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 후보자격박탈사건의 배후에 학교본부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배경에는 총장비리문제의 공론화를 주도한 총학생회와 학교본부간의 갈등이 있다.
 
2012년에 불거진 총장비리의혹에 대해 2013년과 2014년 총학생회는 이렇다 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 ‘어용’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15년 총장비리의혹을 밝히겠다는 공약을 내건 총학생회가 당선되었고, 총학을 중심으로 비리문제의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PD수첩은 이 문제를 다루며 총장의 교직원 탄압, 교비횡령, 미아캠퍼스 매입 리베이트의혹 등을 보도했다.
 
이에 대응하고자 학교본부는 원래 등록금에 포함되어있던 학생회비를 더 이상 걷어주지 않겠다고 총학생회에 엄포를 놓았다. 또 비상총회를 위한 장소대여에 협조해 주지 않았고 “선동해서 도울 수 없다”는 공문도 전달했다. 둘의 대립이 심화됨에 따라 총학생회는 학교본부에게 눈엣가시가 됐다. 골이 깊은 갈등관계를 고려할 때 총장비리문제에 민감한 학교 측이 이번 박탈결정 개입했다는 추측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박탈결정의 주체는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구성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이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으려면 결정을 주도한 6명과 학교본부 간의 연결고리를 밝혀내야 한다. 당시 비상회의를 소집한 육난영 중앙선과위장은 “매년 해오던 절차였다”며 “명예훼손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대자보를 붙인 후 잠적했다.
 
한연지 성신여대 현 총학생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명확한 물증이 나오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박탈결정에 학교 측이 개입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답했다. 또“총학생회 선거에 학칙을 근거로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을 뿐 아니라 해당 규정은 과거 운동권을 탄압하기 위한 악폐라며 인권위원회의 수정권고조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사진/바람아시아
 
연세대학교는 선거가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음대선거관리위원장이 투표소 앞에서 특정 선본을 지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를 논하는 자리에서 중앙선관위원장이 “오프 더 레코드인데, 개인적으로 이 사안을 묻고 싶다”고 말한 것이 선거 공정성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총여학생회장이 중선관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파장이 잇따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음을 인정하고 사퇴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선관위장과 선관위원이 결핍된 채로 선거를 진행할 수 없기에 투표를 중단했다. 음대선거관리위원장이 특정 선본을 지지했다는 의혹의 사실여부에 따라 음악대학 투표소의 표가 유효하지 않게 될 수 있는 만큼 진상파악이 필요한 것도 선거중단의 중요한 이유다. 또한 중앙선관위 자체의 공정성 시비로 이어져 선거 자체가 무산될 우려도 컸다.
 
다른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공석을 대행하며 소집된 긴급 중앙운영위원회는 선거를 재개하기로 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위원회는“중선관위장이 선거 공정성에 위배되는 언행을”했지만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중선관위 자체에 대한 공정성은 위배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중선관위의 공정성이 담보되었으니 음악대학의 투표소의 표를 비롯한 모든 표는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선거는 재개되었다. 중단된 기간만큼 투표 기간을 늘려 선거를 마쳤고 논란이 많아서인지 학생들의 투표참여도 뜨거워 총 투표율은 51%를 넘었다. 개표결과 경선하던 선본 중 ‘Collabo’가 당선되었다.
 
연세대학교의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노력의 과정”이었다며 학생사회의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음에 만족했다. 또 다른 재학생은 “선거철이면 늘 부정선거의혹과 공정성시비가 계속된다며”이번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피로감을 내비쳤다.
 
선거의 공정성 문제가 대두된 데는 선본이 소위“어느 계열”이냐에 따라 특정 세력이 선거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한 몫 한다. 학내문제와 더불어 사회문제도 두루 다루려는 ‘운동권’과 학내문제에 집중하자는‘비권’계열이 큰 두 갈래다. 보통 운동권은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주요 전략으로 삼고 비권은 투표 등의 절차적 단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운동권의 경우 비권과 달리 자신들이 ‘키우는’선본을 밀어주며 세를 이양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이번 연세대 사태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학 선거에서 벌어지는 공정성시비의 많은 경우는 같은 계열의 후보를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많은 학교에서 다음 총학생회를 선출하는 선거의 중앙선관위원장을 당해 총학생회장이 맡는 만큼, 자신과 같은 계열의 후보를 밀어줄 수 있다는 거다. 운동권계열이 집권한 해에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다.
 
세 학교가 겪은 선거파행은 대학교 총학생회의 현주소의 면면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대의 경우는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학생자치의 위기를, 성신여대의 경우는 학교본부와 총학생회 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연세대학교의 경우는 선거의 공정성문제를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소위 ‘계열 갈등’이 숨어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세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대개의 대학교 총학생회가 공유하는 문제다. 인터뷰에 응한 서울시내 여러 대학의 학생회 임원들은 학생들의 무관심을 학생자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꼽았다. 성신여대가 보여주는 학교본부와의 갈등과 연세대가 보여주는 선거의 공정성문제와 ‘계열 갈등’도 많은 학생사회가 공감하는 문젯거리다. 그 외에도 각 학교만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학생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학생자치이며 그 목적에는 학생들의 권익이 있어야 한다.
 
 
 
 
윤호연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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