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한국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시장 마감일이 다가오고 외국인 선수 계약도 막판에 접어든 가운데 팀별 인재영입 움직임이 예년과는 사뭇 달라져 눈길을 끈다.
한화·롯데 등을 제외하면 주요 대기업 계열 구단은 지갑을 굳게 닫았다. 반면 스몰 마켓 구단이자 자립형 구단인 넥센과 NC는 인건비 지출에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이다.
10월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 간의 경기를 마치고 한국시리즈 4승1패를 거두며 14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두산 선수들이 박정원 구단주를 헹가래 중이다. 사진/뉴스1
자립형 야구단…인건비 화끈하게 쓰는 NC와 넥센
22일 정오 현재 이제껏 올해 FA장을 통해 거래된 계약 총액은 무려 723억2000만원으로 기존 기록인 720억6000만원을 넘었다. 여기다 아직 FA장에는 두산 출신 FA 세 명이 남은 상태다. 오재원(30)과 고영민(31)의 계약을 마치면 계약 총액 800억원 돌파도 유력해 보인다.
정우람(30)과 심수창(34)을 SK와 롯데서 데려온 한화나 윤길현(32)과 손승락(33)을 SK와 넥센서 데려온 롯데가 시장의 광풍을 이끈 가운데 결정적 '한 방'은 NC가 쳤다. NC는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30)을 계약기간 4년, 총액 96억원(계약금 56억원, 총연봉 30억원, 연평균 7억5000만원)에 데려온 것이다.
NC는 과거 FA 자격을 딴 이호준(39), 이현곤(35·이상 2013시즌), 이종욱(35), 손시헌(35·이상 2014시즌)을 영입해 쏠쏠한 효과를 본 팀이다. 신생팀 지원 혜택으로 보상선수 없는 영입이 가능했고, 이를 FA 성공적인 인재 영입으로 잘 이어간 경우다.
다만 이번 박석민 영입은 의외로 평가된다. 모기업의 순이익이 많고 야구를 잘 아는 구단주가 있는 팀이긴 하지만 한국 야구계 역대 최고의 비용으로 박석민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NC도 보상선수를 줘야 한다. 결국 NC는 삼성에 최재원(25)을 보상선수로 내줘야 했다.
손승락은 물론 유한준(34)도 잡지 못했지만, 넥센도 최근 선수 영입에 많은 자금을 들이는 팀으로 꼽힌다.
FA와 외국인 선수의 계약을 일찍 마무리하고 일반 선수 연봉계약에 집중하고 있는 넥센은 17일 내야수 김하성(20)의 연봉을 올해 4000만원 대비 4배나 올려 책정하는 파격적 결단을 내렸고, 18일 포수 박동원(25)과 외야수 유재신(28)의 연봉을 각각 105.9%, 148.4% 끌어올렸다.
급기야 21일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아 내년 마운드에 서기 힘든 한현희(22)에게 3억원의 연봉을 안겼고, 올해 6800만원을 받던 조상우는 1억7000만원에 계약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서울시와 고척돔 사용계약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모습과는 상이하다.
2016년 시즌부터 넥센히어로즈 홈구장으로써 사용되는 '고척스카이돔'. 사진/서울시
대기업 야구단…돈줄 꽉 묶는 삼성
'자립형 구단'의 통큰 투자와 달리, 거대 기업을 낀 대기업 구단 일부는 돈줄을 묶었다.
제일기획의 삼성그룹 계열사 보유 지분 전량 인수로 내년부터 제일기획의 산하 자회사 체제로 운영될 삼성은 벌써 인건비에 돈줄을 묶는 모습이 역력하다. 올해 하반기 여러가지 이유로 인력 유출이 심했지만 돈줄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삼성은 해외원정 불법 도박 파문으로 검찰의 내사를 받았던 필승조 투수 윤성환(34)과 안지만(32), 임창용(39)을 올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했고 결국 정규시즌과 달리 우승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나자 삼성은 임창용을 보류선수에서 제외하는 형태로 방출했다. 윤성환과 안지만의 경우 보류선수 명단에 있지만 혐의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지 않으면 구단이 출전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삼성은 팀의 상징적인 선수인 이승엽(30)은 잡았지만, 올해 주전을 맡았던 주전 3루수 박석민을 NC에 빼앗겼다.
그런데도 삼성은 올해도 외부 FA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외국인 선수 콜린 벨레스터(29)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 10개 구단 최하 금액인 50만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85만달러에 계약한 앨런 웹스터(25)의 계약금과 합치면 올해 알프레도 피가로(31·도미니카·70만달러)와 타일러 클로이드(28·미국·65만달러)의 계약금 합산액과 동일하나, 리그의 올해 외국인 선수 연봉 인상 기조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올해 그룹경영이 매우 어려운 기업을 의미하는 '3D1S' 중 하나로 꼽히던 두산은 '총액 100억대 FA'의 유력주자로 손꼽혀오던 김현수(27)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와 계약하는 과정을 안도하며 보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23세 신입사원의 명퇴'가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요즘 선수와 거액 계약을 맺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산은 김현수가 볼티모어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이 깨질 상황이 걱정일 수밖에 없다.
SK는 지난 해와 달리 6명의 FA 중 반인 3명을 다른 팀에 내줬다. 박정권(34·총액 30억원)과 채병용(33·총액 10억5000만원)을 원소속팀 우선 협상기간 중 잡았고 이후 박재상(33·총액 5억5000만원)과도 계약했지만, '최대어' 정우람(30)과 '믿을맨' 윤길현(32)을 한화와 롯데에 빼앗겼고 '베테랑포수' 정상호(33)가 SK를 떠나 LG와 계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신생팀 지원 정책에 의해 2015~2016년은 보상선수 없이 외부 FA 영입이 가능한 KT 또한 돈을 많이 쓴 팀이 아니다. 지난 해 겨울 박경수(31·총액 18억원)와 박기혁(34·총액 11억4000만원), 김사율(35·총액 14억5000만원)을 계약 총액 43억9000만원에 데려오더니, 올해는 유한준만 총액 60억원에 KT의 유니폼을 입혔다. 이석채 전 KT그룹 회장 시절 프로야구단 창단 추진 때보다 투자의욕이 줄었고, 같은 '21세기 완전 신생팀' NC와 비교해도 페이롤(선수단 총연봉)이 적지 않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FA의 계약 총액만 100억원에 달하는 많은 돈을 들인 롯데(손승락 60억원, 윤길현 38억원)나 한화(정우람 84억원, 심수창 13억원) 등의 팀도 있다. 총액 170만달러를 들여 외국인 투수 헥터 노에시(28)를 들인 KIA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철 대기업 산하 구단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 지출을 전보다 확연히 줄였다.
2016년 시즌부터 삼성라이온즈 홈구장으로써 사용되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의 공사 현장. 사진/대구시
한국 프로야구산업 축소?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야구계 일부에선 이같은 일부 팀의 변화에 걱정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한국 야구계가 10개 구단으로 확장되며 시장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현재 모습을 얼어붙은 경제 환경에 다시 움츠러드는 위기 상황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기업을 배경에 둔 삼성의 변화, KT의 소극적 투자 등이 위기의 이유로 거론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여기고 우려할 이유도 없다"는 견해도 많다. 본지가 스포츠 관련 교수와 국내 야구인 출신 인사들에게 질의한 결과 다수는 "인건비 투자 규모가 줄어든 구단 중에서 삼성의 변화는 그동안 다른 종목의 변화를 통해서 예견된 일이고 KT는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다른 구단은 굳이 시장에 나온 거액의 FA를 붙잡아 얻을 효과가 적은 팀"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근래 넥센·NC의 적극 투자, 삼성과 두산의 소극 지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일각에서 걱정을 하고 있지만 프로야구 산업이 국가 경제상황에 비해 위축된 상황은 아니다. 전술한 네 팀은 각자 팀 상황과 여건에 맞게 확 써야 한다고 봤을 때 쓰고, 때가 아니라고 여길 때는 큰 움직임이 없던 팀"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오히려 오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구단의 운영이 왔다갔다하는 롯데나 한화가 문제다. 스포츠를 산업이 아닌 그룹과 그룹 오너의 '펫스포츠(Pet Sports)'로 보고 있다"면서 "프로스포츠도 이제 과거와 달리 모기업에게서 무한정 돈을 받아서 펑펑 쓰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어떻게 돈을 더욱 효과적으로 쓸지 더욱 고민해야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준혁 기자 lee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