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북한 시장화 진전, 계획경제로 못 돌아가는 수준”

합법 시장 400~500곳…소비주도층 100만, 휴대전화 보유 370만
북한 경제문제 전문가들 ‘남한 문화·상품 인기’ 분석 일치

입력 : 2015-12-27 오전 10:44:3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 권력을 잡은 지 만4년이 지난 현재 북한에서는 시장화와 정보화가 급진전되어 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갈 수 없는 수준까지 와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8일 북한연구학회 동계학술회의에서 “북한 경제는 계획경제 복원을 시도하기 어려운, 돌이킬 수 없는 경로로 진입했다”며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수준의 개방경제이며 정보화의 진전으로 외부세계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입되고 있고 ▲2009년 화폐개혁과 같은 반개혁 조치들이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악화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웠으며 ▲일반 주민뿐 아니라 권력의 상층부도 시장경제에 의존해 생존할 정도로 시스템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정보화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상인들은 실시간 시장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핸드폰 사용이 필수가 되었고, 일반 주민들도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도 핸드폰을 구입하고 있다”며 “핸드폰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2008년부터 휴대전화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해 2015년 10월 현재 370명이 보유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간한 '2015년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서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북한의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280만명이었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정보화로 인해 남한의 드라마, 가요 등 한류를 접촉하는 주민들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며 북한 주민의 85~90%가 한국의 대중문화를 접했다고 답한 설문조사를 소개했다. 그는 “디지털 혁명이 향후 북한체제의 변화를 선도할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 당국은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혁·개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시장 현황으로는 합법적 시장이 400~500곳, 비공식 시장이 약 250곳 정도로 추산된다. 커티스 멜빈 미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24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출연해 "위성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올해 북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합법적 시장의 확대"라며 "합법적 공식 시장의 수가 4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0월에도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2010년 200여개였던 시장 수가 5년 사이에 2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합법적 시장’은 당국이 직접 건물을 지어 상행위를 허가한 장소로 골목이나 길거리 등에 조성된 비합법적인 시장 ‘장마당’과는 차이가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2일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 등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시장이 시·군·구·구역에 평균 2개씩 전체 500여개가 있으며, 비공식 길거리·골목시장을 포함하면 750개"라고 추산했다. 임 교수는 구체적인 사례로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시장의 경우 현재 매대가 1만2000개로 추정되며, 양강도 혜산시장의 경우 시장 이외 지역과 노점까지 포함하면 4000개의 매대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내수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소비 주도층이 약10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해외 직접구매 형식으로 남한 제품을 사들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2012년 이후 추진해온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등 경제정책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권 교수는 21일 북한연구학회 특별학술회의에서 ▲북한이 농업 부문에서 선보인 포전담당책임제는 농산물 처분권의 일부를 개인에게 준다는 점에서 중국이 1978~1981년 시행한 ‘농가생산책임제’와 유사하며 ▲경제개선 조치를 단계적이고 실험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1980년대 중국의 점진적인 개혁 과정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지난 4년간의 시장 활용 정책과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실험은 북한식 체제의 물질적 재생산 시스템을 복원·강화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어 북한 당국에 지속적인 추진 의지를 갖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평양 대동강변에 조성되어 지난 10월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의 모습. 최근 나아진 북한의 경제 사정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외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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