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해결 '깜깜'…·대통령 면담 성사 어려울 듯

정부, 교육감들 면담요청 다음날 '엄정대응' 재확인
사태 미결되면 130만명 아이 둔 가정 피해 우려

입력 : 2015-12-24 오후 5:52:38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청의 갈등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도교육청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성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태 진정 기미가 갈수록 요원해져 피해가 결국 130만명에 이르는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원생을 둔 가정에 고스란히 전가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까지의 모든 아동에게 정부가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동안 아이가 국·공립유치원에 다니면 11만원,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면 원아 1인당 학비 22만원과 방과후 학비 7만원이 지원받아왔다.
 
그러나 누리과정이 중단된다면 내년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는 매달 29만원씩 나오는 보육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내년도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어린이집 2조1323억원과 유치원 1조8916억원 등 총 4조239억원이다. 하지만 지방의회 심의를 통과해 확보된 예산은 1조1322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8%에 불과하다.
 
실제로 17개 시·도교육청 중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전액 편성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서울·광주·세종·경기·강원·전북·전남 교육청은 내년 예산안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특히 서울·광주·전남교육청은 서울시의회가 형평성을 이유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마저 전액 삭감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들이 보육대란의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경남·제주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개월 분만 편성했고 부산·인천·대전·충북·충남·경북은 6개월 분, 대구·울산은 8~9개월 분이 각각 시·도의회를 통과하는 등  전체 누리과정 예산 배정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육대란 우려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이달 25일까지는 예산이 편성돼야 하나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청은 서로 누리과정 예산을 떠넘기며 학부모 불안과 사회적 혼란만 야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우회 지원을 위한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어린이집 예산 1조8000억원 가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각 시도교육청의 입장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과 교육 재정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교육감들은 일관되게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의 의무지출경비로 편성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해 왔다"며 "정부와 국회는 누리과정 관련 예산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할 보육대란의 책임을 교육청에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 예산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의 책임있는 답변을 듣고자 한다"며 "이를 위해 공문으로 대통령 면담 신청을 간곡히 요청했으며 이 자리를 빌어 면담을 공개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 이영 차관은 24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교육감으로서의 당연한 법적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초래될 보육대란의 모든 책임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학부모를 볼모로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교육감들은 내년 1월 조기 추경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을 조속히 편성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 차관은 예산편성을 안한 교육감들을 이번 주말에 만나 설득할 방침이다. 그러나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대법원 제소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할 계획이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각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미편성은 130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유아를 볼모로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하고, 만 3~5세 유아들이 차별없이 교육과 보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추 실장은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이 계속해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시에는 재의요구 요청, 대법원 제소 및 교부금 차감 등 법적·행정적·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경고했다.
 
이에 협의회는 "대통령 면담 외에는 다른 방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부와는 만나서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청와대에 대통령 면담 공식 접수를 해놓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이달 말일에 답변을 다시 확인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무조정실장과 이 차관이 법적대응까지 밝힌 가운데 누리과정을 편성하지 않고 대통령 면담만 요구하는 시도교육감들은 현재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연말이 돼서야 누리과정 예산 편성 두각이 나타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서울교육청의 누리과정 미편성으로 집행을 못하고 있다고 밝힌 서울시는 "보육대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내년 2월 초까지 교육청에서 누리과정을 편성해야 한다"며 "내년 1월에 부모들이 어린이집에서 카드를 결제하면 카드사에서 어린이집으로 돈을 보내고 사후에 카드사에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사회보장정보원으로 돈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늦어져도 자치구에 내년 2월10일까지는 돈을 줘야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어린이집의 모습. 사진/뉴시스
 
 
윤다혜 기자 snazzy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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