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경제민주화를 비롯해 무상보육, 근로자 노동여건 개선 등 민생과 직결된 사안들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신뢰'는 이미지와 허상에 불과했다는 지적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아예,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중도층 민심을 잡기 위해 경제민주화와 무상보육 등 야당 정책들을 선점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며, "이는 처음부터 국민을 속이기 위한 꼼수"였다는 비판까지 내놨다. 경제민주화를 설계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토사구팽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과 강령 등을 볼 때 2012년 대선 공약은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며 "증세에 반대하고 기업과 자본가 중심의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와 증세 없는 복지, 무상보육 등을 강조했을 때부터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게 뻔해 보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공약 미이행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약 가계부에서부터 그 조짐이 엿보였다. 당시 정부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대선 때 발표한 307개 공약(중앙 201개+지방 106개) 중 140개만 국정과제로 명시해 공약 중 절반을 저버렸다.
내용은 더 엉성했다. 경제 활성화와 복지정책 등을 구현하기 위해 총 134조8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세입은 50조7000억원에 그쳤고, 세출절감이 84조1000억원(국정과제 재투자 40조90000)에 달했다. 국정과제 재투자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미 공언한 약속을 조정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하겠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부실한 재정을 이유로, 노인표를 의식했던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100% 보장 공약은 본인 부담 소폭 완화로 변경됐으며, 무상보육 구현을 놓고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예산 떠넘기기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현실화됐다. 급기야 여당 원내대표가 나서 "대선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반성한다"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됐다"고 쐐기를 박기에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남은 2년여의 임기다.
여당 원내 사령탑의 일침에도 정부의 공약 가계부는 전혀 수정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이제는 땜질식 처방도 어렵게 됐다는 자조마저 정부 안팎에서 들리는 실정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쫓겨나듯 내쳐진 것과 반대로 어심만을 살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실세로 군림한 것도, 정치권은 물론 재정담당 관료들이 공약 가계부에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다.
박 대통령의 고집 탓에 국가 재정도 악화일로다. 올해 정부 예산은 386조7000억원으로,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요구를 반영해 정부 지출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전년도보다 6.2% 늘어난 122조9000억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22조3000억원, 문화·체육·관광 예산에 6조6000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명박정부 말기 13조원대였던 관리재정 적자가 박근혜정부 들어 29조5000억원까지 급증했다. 올해 관리재정 적자는 30조원을 돌파가 확실시된다. 이에 따른 국가채무는 64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국민 부담이 국가부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약 이행 대신 '빚'만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신년사에서 "공공, 노동, 금융, 교육의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서 미래 30년 성장의 든든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