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나는 검찰을 사랑합니다"

입력 : 2016-01-11 오전 6:00:00
"사랑합니다."
 
2013년 10월21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나온 사랑 고백이다. 고백한 사람은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 상대는 ‘검찰’이었다.
 
그날 국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수사팀장이던 윤 검사를 팀장에서 끌어내린 것을 두고 칼날 같은 공방이 고성과 함께 숨가삐 이어졌다. 윤 검사는 당시 작심한 듯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 직원들을 강제수사해야 한다는 보고를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묵살했다고 폭로했다. 국감장은 곧 부서질 듯 얼어붙었다.
 
윤 검사의 고백은 긴장감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나왔다. 국감위원인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하극상이라며 질타하기 위해 검찰을 사랑하느냐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검사의 유명한 일갈이 그 다음에 나왔다.
 
정 의원은 “진정으로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있게 해 준 조직을 위해 나갈 때는 조용히 나가야 한다. 이게 검찰조직”이라며 대놓고 사퇴를 종용했다. 정 의원은 검찰 출신도 법조인 출신도 아니다.
 
바로 다음날 조 전 지검장과 윤 검사에 대한 감찰이 시작됐고 두 달쯤 뒤 조 지검장은 무혐의, 윤 검사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박형철 당시 부팀장도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윤 검사와 박 검사는 이듬해 인사에서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특히 박 검사는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참여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박 검사가 검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2년 뒤인 이번 정기인사에서 또 다시 좌천됐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데, 박 검사 역시 윤 검사 못지않게 검찰을 사랑했다. 필자가 출입처에서 지켜본 그는 살인적인 업무강도를 기꺼이 견디며 수사에 철저했고, 공직자로서도 늘 공정하고 투명해 기자들에게까지도 신의가 두터웠다. 특히 수사와 관련해서는 천재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 그가 떠나는 것은 검찰에 대한 또 다른 사랑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검찰은 보기 드문 유능한 검사를 또 떠나보냈다. 전말을 보면 자의라기보다는 타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선은 윤 검사에게 쏠린다. 다행히 아직 그는 의연해 보인다.
 
정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검찰에 불어 닥칠 외풍은 그 어느 때보다 거셀 것이다. 윤 검사와 박 검사의 일만 봐도 예상은 어렵지 않다. 외풍에 휘둘려 검찰조직이 아닌 ‘검찰집단’으로 조롱받는 일이 없도록 검찰은 더욱 중도를 지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윤 검사의 사랑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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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