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는 박근혜 정부 출범 4년차이다. 이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그간 추진해온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고 다지는 수순을 밟아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근래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은 이른바 ‘4대 개혁'으로 공공, 노동, 금융, 교육부문 개혁이다. 이 4대 개혁 추진 현황에 대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의 사회로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등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김광두) 우리 경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어려움을 풀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작년부터 4대 개혁이라는 것을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시원스레 추진되는 것 같진 않다.
(김동원) 4대 개혁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15년 8월6일 대통령 담화에서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신 4대 개혁으로 간판이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시작은 ‘국민 행복론’이었지만 2년 절반을 지나온 시점에서 개혁론으로 바뀐 것이다.
(신세돈) 한 정부가 출범하려면 그 정치세력이 최소한 집권을 가정하고 1년 또는 2년 전부터 구체적인 액션 플랜과 인적조직을 갖추고 내용도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혁신이라고 했다가 활성화라고 했다가 재도약이라 했다가, 임기 절반이 훌쩍 지나간 시점에 창조경제와는 전혀 별개의 4대 개혁이 나오니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
(김형준) 역대 정부에서는 대개 집권 1년 차에 개혁과 혁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개혁이 늦게 나왔다. 이유를 보면 정부 출범 전에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는데 정권을 잡고 나니 창조경제로 바뀌었고, 그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불명확해 성과를 못 냈던 것이 하나다. 다음은 당정관계가 원만치 못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좋고 확실한 방법은 역시 개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김광두) 정권이 강조하는 국정운영 기조가 1년 사이 자꾸 바뀌어 가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정치적인 이유라도 있을까. 또 내용 자체가 개혁으로 보기 어려운 지엽적인 부분에 치중된 면이 있고, 그러다 보니 추진 자체도 큰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김형준) 미국 레이건 대통령 같은 경우, 그래도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한다. 중요하게 지적되는 부분이 대통령 역할에 대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실제 레이건 대통령은 세금 삭감, 노동 유연성 확보, 그리고 강한 미국을 내세웠다. 이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국민들과 대화하고 설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국회를 향해 경제활성화법이나 여러 중요 쟁점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다. 미국 같으면 어떨까.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을 보면 평균 한 달에 1.7회 씩 외부인사와 간담회를 했다. 즉, 이런 중요한 문제, 4대 개혁과 같이 이해당사자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항에 대해 국민들 앞에 박 대통령이 나와 왜 이게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고, 나아가 야당과도 만나야 된다. 그냥 당위론적 시각에서 비판만 하면 안 된다.
(김광두) 4대 개혁 내용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일단 노동개혁은 지난번 노사정 합의가 있었다.
(신세돈) 합의가 있었지만 지금 정부가 내놓은 ‘노동 5법’을 들여다보면 노동조합 쪽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부분, 야당 쪽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은 노사정 합의와 전혀 별개로 정부가 입법을 추진했다는 것이 가장 큰 현안이다.
(김동원) 노동 문제는 극단적으로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 정부는 고용 측면에서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노동개혁’이라고 말하는데, 진보 쪽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일자리를 불안케 하고 청년들에게도 아무 이익 없는 ‘노동개악’이라 말한다.
(김형준) 노동 5법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이걸 꼭 일괄 타결해야 할까. 우선 (여야가 합의한) 3법을 빨리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좀 더 조정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 같은 경우도 보건의료와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조율을 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김광두) 공공부문은 정부 스스로 잘 된 것 같다고 평가했는데, 과연 그런가.
(신세돈)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 요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IMF 위기 이후 한국 공공부문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재정 건전성과 공공기관 정상화 이 두 가지라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개혁의 방점이 재정 건전성 확충과 공공부문 민영화 혹은 효율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런 부분은 전혀 언급도 안하고 공무원 연금 부분만 이야기한다.
(김동원)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공공개혁의 핵심은 공공기관부터 임금피크제 도입, 유사 중복기능 정비, 보조금비리 근절, 재정정보 공개, 유사 중복지출 효율화 등이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당연히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사항들이다. 이걸 개혁 과제로 내걸었다.
(김형준) 마치 과거 어떤 정부도 하지 못한 것을 했다는 식으로 공무원연금개혁을 포함해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것을 과장해 가져간 부분이 있다. 바로 선거 때문이다.
(김광두) 금융개혁은 상당히 잘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평가가 있었는데.
(김동원) 금융개혁으로 정부가 내놓은 내용들을 보면 금융감독 쇄신, 금융회사 자율문화 정착, 기술금융 확충, 자본시장 기능강화, 핀테크 육성, 금융규제의 전환 등이다. 그런데 소탐대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 금융이 안고 있는 최대 문제는 가계부채다. 둑이 갈라지고 봇물이 터질 일이 눈앞에 놓여 있고, 기업부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뒷산이 무너지는데 마당에서 풀 뽑고 있는 격이다.
(신세돈) 금융개혁에 대해 그간 총평이 나온 것들을 종합하자면, 첫째로 초점이 불분명하다. 둘째, 사후약방문식이고, 정부 간섭이 개혁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치와 정치 부문 관여만 사라져도 금융권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평가들을 보면 이 정부가 내놓은 금융개혁은 지엽적이다 못해 오히려 내 놓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개혁적이라고 할 만큼 주객이 전도된 개혁이라는 생각이다.
(김광두) 관치는 우리 금융의 고질병인데, 이게 왜 안 없어질까.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나.
(김동원) 관치(행정의 통치)가 아니라 권치(권력의 통치)이기 때문에 안 없어지는 것이다.
(김형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중 하나가, 행정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통치와 정치를 분리한다면 통치에 훨씬 더 힘을 많이 두는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좋은 것으로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가장 정상적인 것인데 지금은 금융문제를 포함해 개혁문제도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국정운영 방식이 민주적이 아닌 권위주의적이면서 행정중심적으로 가다보니 이것이 마치 과거로 돌아가게 돼, 모든 것이 관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되고 있는 점이다.
(김동원) 금융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 감독의 독립성 확보다. 개혁의 핵심이다. 비명시적 규제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감독 당국의 정체성 또는 감독 당국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금융 산업을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광두) 금융개혁도 실망스럽지만 교육개혁은 어떤가.
(신세돈)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문제는 공교육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 사교육비를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줄일 것인가라고 본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현 정권은 3년이나 지나가는 동안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 교수 10명 중에 9명 정도가 ‘진짜 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육부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주장하는 대학구조 개혁법을 철폐하는 것이 교육개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내용이다.
(김광두) 지금까지 우리가 4대 개혁을 다 이야기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 자체가 지엽적인 부분 중심으로 개혁으로 보기 적절치 않고, 또 그걸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방법도 서툴러서 아쉽다는 것 같다.
(김동원) 아직 정부가 2년이 남았기 때문에 개혁 과제를 바로 세우고 제대로 된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중요한 계기가 4월 총선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한테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잡아야 된다.
(김형준) 대통령이 갖고 있는 개혁에 대한 잘못된 몇 가지 인식을 고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한다.
첫째, 대통령은 개혁의 주체고 나머지는 다 개혁 대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부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이 나서면 개혁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도 버려야 한다. 개혁이 대통령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결국 국민과 국회가 다 같이 함께 가줘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설득 과정도 필요하고 협조 과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마치 대통령이 개혁의 깃발을 내세우면 다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재, 개혁을 하면 바로 성과가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면 안 된다. 개혁은 지금 해도 10년 후, 20년 후에야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의 병자라고 했던 독일이 지금 아주 강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슈뢰더 개혁’이라는 것인데, 자신들의 정권을 내 놓을 수 있다는 그런 확신 속에서 국가를 우선했더니 된 것 아니겠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안 보인다. 오로지 집권당과 정부의 유불리만을 따진다. 그런 개혁에 대한 인식적 오류를 바꾸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광두) 우리 경제가 정말 어렵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선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데 그걸 위해 하는 것이 4대 개혁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4대 개혁은 그 내용 면에서 극히 부족하고 추진 방법도 미숙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이 4대 개혁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재정비해서 효과적으로 잘 추진해주셨으면 한다.
국가미래연구원
팟캐스트 방송 ‘김광두의 돋보기’에서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좌측부터)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