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금융당국이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 '성과주의 도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직원급 인사에서 승진 연한에 제한 없이 특별승진을 늘리는 동시에 지점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호봉제 비중을 낮추고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등 급여체계 자체를 손질하는 것은 노조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어 은행으로서는 인사를 통해서 성과주의 도입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은 전날 성과가 우수한 행원급 직원 6명을 특별 승진시켰다. 5명의 행원이 과장으로 승진했고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 한명이 대리로 승진했다.
이는 통상 4~5년 걸리는 승진 연한을 단축시킨 것으로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틀어 처음 있는 파격적 사례다. 지금까지는 행원이 책임자급으로 승진하려면 일정한 근무 기간을 채워야 했다.
이처럼 행원이 영업실적만 가지고 일부 직원을 호봉에 상관없이 책임자로 특별 승진한 것은 은행 창립 이래 처음이다. 전체 은행권에서도 흔치 않은 '파격 인사'라는 평가다. 함영주 행장은 "'노력한 만큼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성과 중심의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농협은행도 이번주 예정된 부장급 이하 정기인사에서 승진 연한에 관계없이 성과가 우수한 직원 140여명을 승진연한에 관계없이 발탁하기로 했다. 예컨대 팀장에서 부장이 되기까지 통상 10년이 걸리는데 성과 우수 직원은 이 기간이 1~2년 단축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승진 연한 제한에 은행원들의 불만이 컸다"며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차원에서 제한을 일부 푸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취임한 이 행장은 "성과주의 확산을 위해서는 능력 있고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이 보상받는 조직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성과급 확대나 개인 평가 시스템 도입은 노조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인데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제자리 걸음 중이다. 특별승진이라는 우회 방식이 은행권 성과주의 확산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은행들은 지점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우리·국민·하나·신한·농협은행은 올해에만 약 130개의 지점을 통폐합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1일 을지로입구점을 폐쇄하는 등 총 16개의 점포를 통폐합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26일 남대문중앙, 목동 등 6개지점을 통폐합한다. 신한은행은 올해 30~40곳의 지점을 추가로 통폐합할 예정이다.
지난해 49개의 지점을 줄인 우리은행은 30~40곳을 추가로 폐쇄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과 농협은행도 올해에만 각각 30여곳, 7곳의 지점을 통폐합한다.
인력 구조조정도 실시한다. 농협은행도 지난달 임금피크제 대상자 전원인 249명이 은행을 떠났으며, 신한은행은 지난 14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대상자는 만 55세 이상으로 올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 190여명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강하게 추진중인 성과주의 도입이 노조의 반발로 어렵게 되자 지점 통폐합과 인력감축으로 이를 만회하려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직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권은 지점통폐합과 인력구조조정을 통해 성과주의 도입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점통폐합과 인력감축은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채널이 강화되면서 은행영업점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 사업비 감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종용·김형석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