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성화'를 이유로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서 정부는 재계의 후원자로 전락했다. 때로는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계 요구를 받아들이며 충실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또 정부가 발의한 법안 상당수는 여대야소의 지형 속에 손쉽게 국회를 통과했다.
26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부는 19대 총선 다음날인 2012년 4월12일부터 지난 15일까지 경제단체가 제·개정을 요구한 54가지 법 가운데 16개 법안을 직접 발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개적으로 입법 과제로 내놓은 법들이다. 재계의 입법 요구 가운데 19개 법이 묶여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발의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45.7%(중복 제외)에 이른다.
국회에서는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이 법인세, 소득세 등 세제 혜택을 주는 3개 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힘을 보탰고, 같은 당 강석훈, 김종훈 의원도 2건을 발의하며 재계 선봉장 역할을 해냈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뜯어보면 재계의 오랜 숙원 해결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경련이 지난 2012년 9월19일 발표한 '규제 개선 과제 10선' 가운데 절반을 정부가 발의했다. 관광진흥법,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했다.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둘러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경제단체는 이 법이 통과되면 "69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상의는 지난해 7월28일 "서비스기업 10곳 중 9곳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여야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일 경제단체의 입법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힘을 실었다.
정부의 입법 노력은 성과도 좋았다. 재계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가 발의한 개정안 16개 가운데 절반 이상인 10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원들이 발의한 23개 법 제·개정안 중에서도 11개가 입법으로 이어졌다.
기업에 치우친 정부의 입법 움직임은 경제민주화 법안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4년 동안 야권과 시민단체가 요구한 경제민주화 법안 중에서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단 1건도 없다. 재계가 반대한 법안들 중에서도 5건만 발의했을 뿐이다. 정부는 2014년 9월 해외진출 법인의 세액 공제를 조정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끝으로 재계와 대립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수개월 만에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사라졌다"며 "대신 경제활성화,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재벌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지배주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에 반하는 정부 태도는 물밑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법안 논의 과정부터 대기업 손을 들어준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오영식 더민주당 의원이 2012년 5월 발의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대표적이다. 적합업종 특별법은 정부 반대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상임위 심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야권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법을 받을 수 없다며 극도의 우편향적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중도로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특별법은 산업위 법안소위에만 18차례 상정됐지만 여전히 계류 상태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정부는 유통재벌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고 질타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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