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7개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수를 줄이기로 잠정 합의한 데 대해 소수정당들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거대 정당들의 ‘기득권 지키기 짬짜미’로 인해 사회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비례대표 수가 줄어든 것은 옳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는 26일 국회 로텐더홀 농성장에서 "지난 1년 넘게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국민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선을 논의하기는 커녕 선거법을 통해 자기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골몰해왔다"며 "두 당의 합의는 소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어떤 통로도 만들지 못하겠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민주가 협상 초기 비례대표 축소 불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주장하다가 '장기 논의과제로 넘긴다'며 입장을 바꾼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 양당이 협상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만 7석 줄이는 안에 합의한 것은 자기들 밥그릇만을 챙기고 국민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시 한 번 논의해주기를 마지막으로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기본 의석수를 보장하고 지역구 의석 수를 차감한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보장해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 통로가 될 것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이병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내놓은 ‘지역구 260석 증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 적용한 균형의석 비례제’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와 더민주(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속한 새누리당이 거부하며 선거구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녹색당도 지난 25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은 표의 등가성과 사표 방지라는 시대중론에 의거해 선거제도 협상에 임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대해서도 “정부·여당 견제와 양당제 혁파라는 지지층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는 선거제도가 변해야 현실 정치에 반영된다”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양당의 합의는 야합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거대 정당의 당리당략에 의한 비례대표 축소 합의가 정치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현재 선거제도를 유지한 채 지역구 의석만 늘려놓으면 거대 정당들의 과다대표가 이뤄지고 이들 사이의 담합이 용이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책을 검토해 투표하는 대신 인물 중심의 선거가 이뤄지면서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선거구 획정 문제를 놓고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26일에도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 1000만표의 사표가 발생하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상황”이라며 “새누리당이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 문제를 일괄처리하자고 하는 것은 선거법 인질극"이라고 말했다.
이목희 더민주 정책위의장도 "선거법을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를 새누리당이 거부하면 29일에 본회의를 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26일 국회 본청 내 로텐더홀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앞줄 가운데)를 비롯한 당직자들이 결의대회 후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