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파스타로부터 배우는 정치

입력 : 2016-01-27 오전 11:01:11
한국인의 입맛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 회식하면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주 메뉴는 삼겹살에 소주였다. 마치 회식의 공식처럼 여겨진 식사 구성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년 전부터 직장 상사랍시고 삼겹살 메뉴만 고집했다가는 유행을 모르는 ‘올드 패션’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회식 메뉴 변화의 중심에 파스타가 있다. 한국에서의 파스타 열기는 이제 특별하다기보다 보편화됐다. 수년전 모 방송사의 파스타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통해 더욱 많이 대중화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알던 토마토나 크림 소스 이외에 올리브 기름과 마늘만으로 근사한 맛을 내는 ‘알리오 올리오’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까지 했다. 파스타는 어려운 레시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350여가지가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에 따라 언제든 메뉴는 추가될 수 있다. 소스뿐만 아니라 면도 다양하다. 나선 모양의 푸질리를 비롯해 속이 빈 원통형의 마카로니,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스파게티까지 취향에 따라 소스와의 궁합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최근 나이 든 어른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파스타와 피자의 고향은 이탈리아다. 파스타와 피자로 기억되는 이탈리아가 유럽 대혁신과 대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한다. 부패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리더십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좌초 위기에 서 있었다. 막강한 재력으로 미디어를 소유한 전 총리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눈과 귀를 흐려놓았다. 그 사이 이탈리아 경제는 곤두박질 쳐버린 지 오래였다.
 
2년 전 총리 자리에 앉은 마테오 렌치는 좌파 정당 출신이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좌파 출신 총리가 과연 개혁을 해낼지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었다. 이탈리아는 2014년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 늪에 빠져있었다. 렌치 총리의 임기 초반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0.8%의 성장률을 보이며 반전 국면을 만들었고 올해 1.6%의 성장을 자신하며 ‘렌치 개혁’의 신호탄을 올리고 있다.
 
렌치 총리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정치 개혁이다. 상하원으로 나누어진 이탈리아 국회에서 상원은 이른바 민의의 전당을 식물 국회로 만들고 있는 전형이었다. 렌치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상원의 입법권과 정부 불신임 권한을 삭제했다. 그리고 다수당을 쉽게 구성할 수 있도록 40% 이상 득표 정당에 보너스 의석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언뜻 민주주의의 후퇴처럼 비쳐질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가장 기본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괴물 같은 정치집단인 이탈리아 상원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했고, 렌치 총리는 이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국회 개혁뿐만이 아니다. 한국 국회에서는 잠자고 있는 노동 개혁을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객관적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해고 절차는 간소화했다. 정규직 신규 채용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었으며 기간 파견근로자 사용 규제는 완화했다. 이전의 이탈리아 노동법은 사실상 근로자 해고가 불가능한 법 시스템이었다. 노동자들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고 렌치 총리에 대한 적개심이 일어날 법도 하다. 그러나 노동 개혁이든 국회 개혁이든 모든 개혁의 결과는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특정한 계층이나 특별한 이해 집단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앞에 두어야 한다. 물론 개혁 법안 이전에 충분한 조정과 소통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잠자고 있다. 비싼 비용을 치러 당선시킨 30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제 구실을 못한지 이미 오래다. 저 멀리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는 국회 개혁과 노동 개혁을 통해 ‘마테오 렌치 효과’를 맛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를 다 쓰러져가는 사자로 비유했던 유럽 국가들은 다시금 주목하기 시작했고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자본이 다시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 소통 능력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가 운영의 한 축인 국회의 무능함도 국민들의 질타를 비켜가기 힘들다. 리서치앤리서치가 KBS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응답한 과제는 ‘정치권의 무능과 대립’이었다. 우리 국민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파스타의 절묘한 식감만큼이나 빛을 발하고 있는 ‘렌치 효과’를 한국에서 맛보고 싶다면 지나친 사치일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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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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