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국내 GDP성장률은 2.6% 성장에 그쳤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내내 미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12월에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한층 커졌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 및 신흥시장의 성장률 둔화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대외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환경이 다시 불안정한 기류에 휩싸이면서 국내 은행산업도 순탄치 않은 한해가 될 전망이다.
최근 은행산업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다. 현재 은행업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은 0.45배로 코스피(KOSPI) 전체 주가순자산비율이 1.0배 인 점을 고려할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것이 시장에서 바라보는 은행산업의 가치인 것이다. 정부에서 금융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시장의 기대에 여전히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은행산업에서 가장 큰 화두는 선제적 리스크관리와 비용 절감이다. 현재 은행의 건전성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연체율은 0.58%로 최근 5년 내 최저수준을 기록했으며, 부실채권비율도 1.41%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작년 말부터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대손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가 2011년 77개에서 2015년 175개로 크게 증가했고 대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대손비용은 큰 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 문제도 중요하지만 경기 민감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구조조정이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정부에서도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5대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는 등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은행 입장에서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기는 하나, 일방적인 익스포져 축소보다는 해당 기업과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비기업에 대한 퇴출운동을 더욱 강화해 건전한 기업으로 자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고강도 비용절감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수익성 개선은 비즈니스 강화를 통한 이익 증대, 각종 비용을 줄이는 등의 방식이 있다. 전자의 경우 순이자마진(NIM)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이자이익의 개선효과가 미미하고 경쟁 심화에 따른 각종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이익을 증대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순이자마진이 소폭이나마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핵심이익이 회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들은 인건비 등을 포함한 비용 절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은행별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으며, 성과급제를 적극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글로벌 은행들과 국내 은행들은 다른 횡보를 이어갔다. 글로벌 은행들은 디레버리징과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조짐에 앞서서 다시 몸집을 줄이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활용해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는 글로벌 은행들이 늘고 있다. 국내 현지법인으로 진출한 외국계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시티은행과 SC은행 2곳뿐인데, 이들은 이미 국내에서의 사업을 일부 축소하고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는 등 국내 은행보다 발 빠른 횡보를 보였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글로벌 은행과 달리 디레버리징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의 산물이 1160조원이 이르는 가계부채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인건비 부담이다. 비용 절감을 일시에 한꺼번에 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기 계획에 맞춰 평상 시 조금씩 진행됐거나 시스템화 돼 있었다면 비용 부담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은행들도 임금체계와 성과평가 체계를 바꾸고 임금피크제 등을 도입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올해는 은행의 체질 개선과 함께 향후 은행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