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한 '신기후 체제'가 현실화되면서 에너지산업의 일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중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도 그 일환으로 보여진다. 이는 곧 일정부분 전력시장의 민영화가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득실이 엇갈리는 가운데 전문가들 의견을 청취했다.
우선 전력시장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찬반이 갈렸다. 발전 공기업의 부실한 재무상황을 고려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장기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국가 기간산업의 성급한 민영화를 경계하면서 공공기관 정상화를 가장한 민영화는 중단돼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전력과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무상황이 취약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국전력의 부채비율은 198.6%로, 200%에 육박한다. 2011년 153.6%와 비교해서도 늘었다. 남동발전 등 발전 공기업의 부채비율 역시 100%를 훌쩍 넘는다. 그는 이를 근거로 "정부가 공기업에 지원하는 예산 등을 고려하면 공기업이 자력으로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송재석 세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라는 큰 틀에서 선(先) 구조조정 후(後) 매각(분할매각 포함)의 대책을 제시했다. 송 교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받아들여 공기업의 비능률성을 제거해 나가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공기업의 활동이 더 투명해지고 수익성 등 재무개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송 교수는 성급한 민영화는 경계했다. 그는 "민영화가 필요하지만 이것이 만병통치약처럼 공기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민영화된 공기업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민영화 이후 나타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공익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의 송유나 연구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와 기능조정의 실체가 민영화에만 집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은 사유화 기조지만 이에 대한 노동자 저항과 국민 반감을 고려, 새로 고안한 개념이 선진화"라며 "공공부문이 선진화·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과 효율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주장했다.
송 연구원은 "특히 에너지 부문에 있어 선진화·정상화는 공적 개입을 축소시키고 민간의 개입을 증대시키는 방향"이라며 "정부와 자본의 통제, 이들에게 종속된 경영진에게 좌우되는 게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신기후 체제 출범은 원론적 입장에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바라보던 전력시장에 구조조정을 재촉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할 계획이지만 석탄발전 의존도가 워낙 높아 목표 달성을 위한 전력시장 체질 개선이 시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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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신기후체제 선제적 대응을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누구나 에너지를 생산·판매하는 시장 조성, 저탄소 발전을 중심으로 전력산업 확대,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 100만대 이상 확산, 국내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병행 등을 추진한다.
현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특히 당장 체질개선 대상으로 내몰린 에너지 공기업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현재 발전 공기업들의 석탄화력 발전 의존도와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자체적으로 신기후 체제에 대응할 여력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구체적인 실천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도 아니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청정에너지 등은 연료 자체가 너무 비싸 현실적으로 발전소를 운영하는데 문제가 있다"며 "신기후 체제와 관련해 정부에서 노후화된 석탄화력발전소를 자연스럽게 폐쇄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겠느냐는 추측만 무성하다"고 답했다.
남부발전 관계자는 "21차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한 달 남짓 됐지만 당면 과제처럼 느끼고 있다"며 "아직 정부에서 어떠한 지침이나 요구가 내려온 것은 없고, 그저 올 상반기 중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 것이라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고"고 말했다.
이는 민간 발전업계도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민간 발전사들에 지시한 주문이나 정책적 요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기후 체제에 대한 우려는 크지만 현재로서는 관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신기후 체제를 빌미로 발전 공기업 구조조정과 전력시장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재계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훈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기후변화는 외면하거나 미룰 수 없는 전 지구적 의제"라면서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기후변화마저 이윤 창출의 기회로 간주하고 에너지산업을 자본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민영화 조치를 단행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