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를 포함한 전력시장 구조조정은 2001년 전력시장에 민간 발전사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정부마다 한번쯤은 만지작거린 카드였다.
한국전력은 2001년 4월까지 전기의 생산부터 송전, 판매 등 전기 유통의 전 단계를 독점 운영했다. 그러다 1999년 발표되고 2000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전력사업구조개편'은 큰 변화를 불러왔다. 한전의 발전 부문이 2001년 4월2일자로 6개 자회사(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남부발전, 중부발전, 서부발전, 동서발전)로 분할된 것이다. 이때부터 발전 부문에서 경쟁체제가 시작됐다.
신현규 발전노조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력산업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8년 외한위기(IMF) 때부터다. 신 위원장은 "IMF는 재정지원 조건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요구했고, 정부는 재정적자 해소와 외화 확보를 위해 공공 영역의 전면적 민영화 정책을 채택했다"며 "전력과 가스, 철도와 같이 매각대금이 큰 네트워크 산업은 영미식 분할 매각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전에서 발전 부문을 떼어낸 후 곧 이들을 민간에 매각하려고 했다. 2002년 당시 우선매각 대상은 남동발전이었다. 남동발전이 한수원을 제외한 5개 자회사 중 가장 수익성이 좋고 재무구조도 탄탄하다는 이유였다. 정부는 남동발전의 민영화가 제대로 이뤄질 경우 다른 자회사들도 순차적으로 민영화할 방침이었다. 남동발전 매각방식은 우선적으로 경영권을 팔고 증시에 상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발전노조 등의 반발과 공익성 훼손을 염려한 여론에 밀려 아무도 남동발전 인수에 응하지 않았고, 매각은 무산됐다.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 3호기. 사진/뉴시스
신 위워장은 "발전노조는 민영화 대상이었던 가스, 철도 노동조합과 공동파업을 강행했다"며 "민영화 반대라는 여론을 확보하면서 2003년 남동발전 매각이 중단되고 배전 분할도 보류돼 현재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전이 2001년 발전 부문을 분리할 때 정부는 애초 송전과 배전, 판매부문까지 독립시키려고 했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최종적으로 전력 소매시장에도 경쟁체제를 도입, 소비자들이 전력판매회사를 직접 선택해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려 했다. 마치 소비자가 휴대폰과 통신사를 골라 쓰듯 전기도 그렇게 사고 팔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소매시장에까지 경쟁이 도입되면 전기의 공공재 성격이 사라진다고 판단, '변동비 반영 발전시장(CBP)'을 도입해 전력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을 분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소매시장에서는 한전이 정부가 결정한 요금에 따라 소비자에게 전기를 제공하고, 도매시장에서는 특정 시간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 중 연료비를 고려해 전력을 입찰, 구매하는 중재안의 성격이 짙었다.
남동발전을 민영화하려는 시도는 중단됐지만, 이후부터는 민간 발전사들이 발전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2013년 2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민자 발전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정부는 민간 발전사들의 발전소 건설을 대거 허용하면서 발전 민영화의 징조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했다.
6차 계획에 신규 건설의향을 제출한 민간회사 23곳은 화력발전소 63기, 총 5만7265㎿의 설비를 짓겠다고 나섰다. 최종 선정된 곳은 9개 기업 14개 발전소로, SK E&S, SK건설, GS EPS, 대우건설, 삼성물산, 동양파워 등이 포함됐다.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2027년에는 민자 발전사의 발전설비 용량이 전체 화력발전 설비용량의 30.9%를 차지하게 된다.
또 한전 발전 자회사들이 LNG발전소 건설을 자체사업에서 SPC(특수목적법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민간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 발전소 건설 단계부터 민간기업들의 지분을 대거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이는 발전소를 짓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는 이점이 있지만 반대로는 민간 발전사들이 발전업에서 자신들의 비중을 서서히 높여가는 진입로가 됐다.
신 위원장에 따르면 발전 공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남동발전 매각 때처럼 직접적인 매각 추진이 아닌 '우회적 민영화'를 통해서다. 그는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30%로 안되는 민간 발전사들이 설비용량이 10~20배가 넘는 공기업보다 훨씬 큰 수익을 낸다"며 "전력산업의 불완전한 시장이 공공에게는 규제를, 민간에게는 무한한 이윤을 주는 구조로 고착됐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사회공공연구원의 송유나 연구원도 "과거에는 매각 등을 통해 소유권이나 경영권을 민간에 이전하는 것이 민영화라고 이해했지만 지금은 민간기업이 굳이 거액을 들여 기존 공기업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며 "자연스럽게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민간영역을 확장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민간기업에게 유리하도록 법과 제도를 완화해 주고, 민간의 수익이 확대되는 동안 리스크는 공기업이 떠안아 국민 부담으로 이전된 것이 지난 10여년간 진행된 한국 민영화의 현주소"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