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투톱'으로 하는 지주회사 전환을 가시화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가 보유 중인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사들이면서 지주사로의 속도를 낸 데 이어, 상속세 재원으로 여겨지던 삼성SDS 지분도 일정부분 처분되면서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의 막이 올랐다.
다만, 현재로서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금융지주사 전환 규제인 ‘금산분리’에 여전히 가로막혀 있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수조원대의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만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삼성 측도 "아직은 먼 얘기"라고 말을 아끼고 있다.
금융지주사 전환은 승계작업 일환
삼성의 주력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은 지난달 28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 지분 전량(37.45%)을 1조5400여억원에 사들였다. 이로써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 71.8%를 보유하는 최대주주가 됐다. 삼성카드는 삼성 금융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비금융회사(삼성전자)가 대주주였다. 이를 해소하면서, 삼성 내 금융회사들은 모두 삼성생명이 지배하는 모양을 갖추게 됐다.
삼성 측은 계열사간 시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선을 긋지만 재계의 판단은 다르다. 사업구조 단순화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은 각각 지난해 10월 말 자사주를 사들였다. 향후 금융지주사(삼성생명)가 나머지 금융계열사의 자사주를 매입하면 자회사 편입요건을 갖추게 된다. 지난달 28일에도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은 각각 300만주, 170만주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도 삼성그룹 행보에 힘을 보탠다. 이 부회장은 평소 "금융계열사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지주회사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상속세 재원으로 여겨지던 삼성SDS 지분 일부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삼성SDS는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낮아도 그룹 지배력에는 큰 영향이 없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과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이건희 회장의 상속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지주사를 세우면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부진·이서현 두 동생에게 계열사를 떼어주는 식의 분할상속이 아니라 금융지주사의 지분을 일부 넘기는 식으로 상속 문제를 풀고 그룹 후계구도를 부드럽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금조달·법안계류…'산넘어 산'
지분매입 등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기초작업은 성공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적질 않다. 일단 자금조달 문제부터 만만치 않다.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각 계열사들이 매입한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만 최소 수조원이 든다.
아울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12조원 규모) 중 2.2%(4조원)를 해소해야 한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5% 이상 가질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강제한 금산법의 발목이다.
이에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생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해 초과 지분을 해소하거나,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 쪽으로 넘기는 방안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인적분할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20.76%) 상속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된다.
삼성의 행보를 결정짓는 또 다른 변수도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중간금융지주사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개정안을 ‘재벌특혜’ 법안으로 규정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의 경우 지주사(삼성물산) 밑에 중간금융지주사(삼성생명)를 두고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 삼성이 조바심을 내는 이유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19대 국회를 마치고 다음 국회가 열리면 이 법은 휴지통으로 들어간다”며 “사실상 재논의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이) 당장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지주회사가 되면 법인세 감면, 계열사 간 정보공유 등이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에 대규모 주식 매각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오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