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 업무로 자책감과 우울증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 간부를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김수연 판사는 경기도 소재 한 경찰서 소속 경비교통과장 A씨의 유족이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유족 비해당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주변인들과 근무수첩에 기재된 내용 등에 비춰, A씨는 경비교통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생긴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돼 보훈청의 보훈보상대상자 비해당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A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A씨가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대학 출신인 A씨는 2003년 4월 경정으로 승진하면서 경기도에 있는 한 경찰서 경비교통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곳에서 미군 시설경비 등 총 548회 경비 업무를 지휘했고 교통단속 2만5234건 등 교통 관련 업무도 책임졌다.
특히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과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의 영향으로 관할 내 다수 미군 시설의 경비 업무가 가중되고 산업단지 건설 등에 따른 교통량도 급증하면서 A씨의 업무 부담은 점차 커졌다.
A씨는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말수도 줄고 대인기피증과 불면증 등에도 시달렸으나 앞으로의 경찰생활에 흠이 된다는 생각에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2004년 2월 전직신청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그해 7월 스스로 목매 숨졌다.
A씨는 유서 대신 근무수첩에 당시 과중한 업무로 자책감과 우울증에 괴로워했던 심정을 남겼다.
수첩에는 '감독범위 과다, 지역유대 어려움', '생과 사의 기로에서 나를 버려야 한다', '바보 같은 놈, 교통사망사고 총 38건, 전년 26건, 12건 증가, 40%가 넘는다. 누가 이 사슬을 끊을 것인가, 종료를 시키자. 더 이상은 안 된다. 내가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총 13회 기록돼 있었다.
이후 유족은 관할 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과 A씨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거부되자 2014년 8월 소송을 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