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 '동주' 속 송몽규 그 자체였던 박정민,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들

입력 : 2016-02-19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박정민의 얼굴을 처음 본 작품은 2011년 개봉한 영화 '파수꾼'이다.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가며 무시하는 친구에게 거친 소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기죽어있는 희준을 담담히 표현했다. 첫 영화나 다름없는 '파수꾼'에서 박정민은 재능을 뽐냈다. '파수꾼'의 세 주인공 이제훈과 서준영, 박정민은 영화관계자들 레이더망에 잡힌 블루칩이었다.
 
하지만 박정민의 행보는 조금 더뎠다. 이제훈과 서준영이 빠르게 치고 나갔지만 박정민은 같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김고은, 변요한과 같은 학교 선후배들보다도 느렸다. 그만큼 여의도와 충무로는 그를 중히 쓰지 않았다. 비교적 작은 역할, 때론 이름도 없는 역할로 박정민을 캐스팅했다. 그나마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의 아역 정도가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그런 중에도 박정민은 계속해서 자신의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박정민. 사진/샘컴퍼니
 
류승완 감독과 함께한 '신촌좀비만화', 독립영화 '들개' 등 박정민은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다져왔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자 윤동주 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송몽규의 삶을 다룬 '동주'에서 그는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그의 연기를 본 영화관계자들은 '송몽규 그 자체'의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고 치켜세우고 있다. 87년 1월 생, 이제 겨우 서른 살의 나이를 가진 연기자의 연기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 박정민을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자신을 향한 쏟아지는 칭찬에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박정민은 평소 생각이 많은 덕분인지 어떤 질문에도 깊이 있고 정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연기를 시작한 배경부터 과정, 연기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들어보며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정민의 어린시절 모습. 사진/박정민
 
"무서운 엄마, 모범생 박정민"
 
87년 1월 25일 충주, 박정민은 건설교통부 공무원의 큰 아들로 태어난다. 안산, 상계동 등에서 살다가 9살 무렵 '하늘 아래 분당'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20년 가까이를 지낸다. 비록 친하지만 고운 말은 오고가지 않는 3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박정민은 어린 시절 엄마가 제일 무서웠다고 밝혔다.
 
"지금 와서 박정민 어린이를 보면 공부 밖에 안했어요. 엄마가 엄청 극성이셨거든요. 학교를 찾아와서 치맛바람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숙제검사 하고 안했으면 때리고 그러셨어요. 엄마 무서워서 중학교 때까지 공부만 했어요. 명절 때 할머니 댁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제일 공포였어요. '내가 무슨 잘못은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혼날까 봐요. 그런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그랬다는 거죠. 지금 와서 보면 다 저 잘 되라고 그렇게 엄하게 키우신 거 같아요. 지금은 제일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엄마예요"
 
박정민은 '와이키키브라더스'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배우 박원상을 만나고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진/명필름
 
중3, 연기를 꿈꾸게 만든 한 남자를 만나다
 
모범생 박정민은 중3 여름방학 친구들과 3박4일 강원 인제로 여행을 떠난다. 부자인 친구 아버지의 별장이 목적지였다. 그곳에서 자신을 영화배우라고 밝힌 한 남자를 만난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 영화배우라는 아저씨는 다름 아닌 박원상이었다.
 
"영화배우라는데 본 적이 없었거든요. 같이 밥도 먹으면서 며칠을 같이 지냈어요. 풍류를 즐기는 느낌이었어요. 멋있다고 생각했죠. 그 아저씨들에게 반했었어요. 그리고 서울에 와서 영화를 봤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19세 관람불가였는데, 다른 영화 표 끊어놓고, 몰래 들어가서 봤어요. 그 영화의 대사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어요. '넌 행복하니?'. 그 질문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요. 당시 원상 선배를 막연하게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연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도 써봤어요. 경기도 학생 문예대전에 냈는데 상도 받았어요. 이 분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박원상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는 충청도 공주 소재의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무서운 엄마 품을 떠나고 싶었고, 배우의 꿈을 더욱 키울 목적이 있었다.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바로 '싸대기'가 날라오니까, PD가 되겠다고 했어요. 뻥을 친 거죠. 그리고 공주에 가서 영화공부에 푹 빠졌어요.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비디오방 가서 매일 비디오를 빌려봤어요. 새벽에 몰래 교실에서 봤죠. 그리고 고1 때 집에 통보를 했어요. '나 영화 감독 할래'."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부모님을 상대로 길고 긴 설득에 나서야 했다는 박정민. 사진/샘컴퍼니
 
대학, 기나긴 설득의 과정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박정민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높았다. 의사 아니면 판사가 될 재목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 똑똑한 아들이 안정적인 길 대신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하니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박정민은 당시 가족의 상황을 두고 '대재앙'이라는 단어를 썼다.
 
"폭풍이 몰아쳤어요. 엄청 혼났죠. 엄마는 물론이고 화를 안내는 아버지마저 화를 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난 공주에 있고, 영화가 좋은 걸. 매일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병행했어요. 공부는 그래도 꾸준히 했어요. 공부를 안 할 수 없는 학교예요. 1년 정도 싸웠고, 고2 무렵에 부모님을 설득하긴 했어요. 당시 생각해보면 엄마는 '니가 뭘 하겠니'라는 생각으로 져주신 거 같아요."
 
사실 영화감독이 최종 꿈은 아니었다. 공주에서 연기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보니 자기가 영화를 찍고 거기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감독을 목표로 세운 거였다. 결국 연기자가 목표였던 셈이다. 약 3년간 국·영·수보다 영화에 더 매진했던 박정민은 한국예술종합대학 영상학과에 지원한다. 그리고 떨어진다.
 
"큰일났죠. 수능 50일 정도 남았는데, 그 때 그 점수로는 '인(in) 서울'도 간당간당했어요. 그 때부터 공부를 했죠. 위기가 느껴졌어요. 전교1등보다 공부를 일찍 시작해서 걔가 자면 잤어요. 3년을 준비했는데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자만심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수능을 좀 잘 보긴 했어요. 그 학교에서 보면 잘한 건 아닌데, 그래도 공부 한 것 치곤 잘 나온 셈이죠. 중앙대학교 영화과에 갈 마음을 먹었어요."
 
중앙대학교 영화과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은 박정민에게 의외의 난관이 나타난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코피를 쏟고 그러셨어요. 제가 영화 관련 일을 한다는 게 싫으셨던 거죠. 원서 쓰러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바꿔요. '마지막으로 부모님 소원을 들어드리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과에 지원하자라고 생각했어요."
 
서울대와 한국외국어대, 고려대에 지원한다. 서울대는 '광속 탈락', 나머지는 추가 합격이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탈락이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인문학부 마지막 합격자가 된다.
 
"그런데 학교 자체를 아예 안 나갔어요. 그럴 생각으로 지원을 한 거고요. 미안한 말이죠. 그래서 제가 고려대 얘기는 잘 안 꺼내요. 죄송하잖아요. 그 학교 떨어진 사람들한테는 무례한 거잖아요. 비록 학교가 창피하다 이런 건 아니고 방향 때문이긴 하지만요."
 
박정민은 극단 차이무의 배우들과 함께 3년 넘게 동거동락했다. 사진/박정민
 
영상원 입학 후 다시 만난 박원상
 
2005년 3월부터 박정민은 남부터미널 인근 영상자료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500원만 내면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본 영화보다 이 시기에 본 영화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8월 영상원에 붙었다. 이듬해 3월까지 시간이 뜨는 바람에 박정민은 여러 일을 하게 된다. MBC '안녕, 프란체스카' 스태프도 해보고, 신문배달, 커피숍 아르바이트 등 여러 일을 해보는데, 다 귀찮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경상도 쪽으로 여행을 다녀오는데 문득 "박원상을 다시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왜냐면 제가 이렇게 살게 된 건 박원상 선배 때문이니까요.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남부터미널에서 박원상 선배 얼굴이 붙어있는 포스터가 딱 보이는 거예요.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 10주년 기념 연극 '마르고 닳도록' 포스터에 그의 얼굴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차이무에 '박원상과 이런 인연이 있는데 전달을 해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죠. 그리고 연락을 받았고, 차이무 연습실로 가게 돼요."
 
박정민의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당시 '오아시스'로 최고의 연기자로 떠오른 문소리를 비롯해 박광정, 문성근 등 당시 최고의 배우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박원상과 문소리의 연기 연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 박정민은 박원상에게 "내일 또 와도 될까요?"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내일 또 한 번'은 3년 6개월이 된다.
 
"매일 같이 극장 문을 열고 세팅하고 다 도왔어요. 돈은 용돈 형식으로 가끔 조금씩 받았고요. 그냥 재밌었어요. 학교는 낮에만 잠깐 갔다가 다시 차이무로 갔어요. 출석이 안 좋아서 당시 성적이 나빠요."
 
박정민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 '파수꾼' 중 스틸컷. 사진/필라멘트픽쳐스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 그리고 '파수꾼'
 
군 생활 포함해서 3년 반을 차이무와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8시에 암전이 됐다 조명이 켜지는데 박정민은 문득 '저기엔 내가 없구나'라고 깨닫는다.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무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연기과' 전과를 목표로 세운다. 한예종 영상과 2학년 1학기 전략적으로 연기과 부전공 신청을 했다.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는데 전과 지원하면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연기과 수업 전 과목 'A+'를 받아낸다. 그리고 전과를 한다. 그렇게 연기를 배우던 중 '파수꾼'을 만나게 된다.
 
"2009년 말에 윤상현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예전에 친한 형이었던 남궁선 감독의 단편 영화 '세상의 끝'에서 주인공을 맡았거든요. 그 때 대사가 하나도 없었어요. 근데 그 영화가 상을 많이 받았었어요. 윤 감독님이 그 영화를 보고 3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죠. 저 그 때 연기 정말 못했어요. 연기한다고 한지 몇 개월 만인 거예요. 감독님은 제가 연기 잘하는 애 인줄 알았는데, 입을 벌리니까 연기가 안 된다는 걸 아신 거죠. 그런데도 캐스팅은 됐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려는 생각으로 캐스팅하신 거죠. 그래서 그렇게 감독님과 배우들, 스태프 도움으로 '파수꾼'을 찍게 됐어요."
 
박정민은 작년 1월 조급한 마음에 연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사진/샘컴퍼니
 
"난 안 될 놈인가?"
 
'파수꾼'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이제훈과 서준영은 '파수꾼'을 기반으로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박정민에게는 그만큼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전설의 주먹', '감기' 등 여러 작품에 출연은 하는데 대중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는 실패한다. 이제훈, 서준영을 비롯해 같이 학교를 다녔던 변요한, 김고은, 이유영, 임지연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자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함이 들었고, 때론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조급함이 있었죠. 이제훈, 변요한, 김고은, 임지연, 이유영 이런 애들이 치고나가는 건 당연해요. 학교에 있을 때부터 잘 할 것이라고 예상된 애들이 잘 되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는 박수를 쳐주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될 놈은 되는구나. 나는 안 될 놈인가?'라는 거였어요."
 
남들보다 비교적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조급함이 생겼고 약간의 패배의식이 그를 괴롭혔다. 너무 힘든 마음에 그는 연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저는 자기학대가 좀 있는 사람이거든요. 채찍질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그 정도가 심했었어요. 작년 1월쯤이 절정이었죠. '나는 안 될 놈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는 저는 괜찮은데 제가 제 주위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가족이나 저를 위하는 친구, 제 주위의 매니저들이요. 나를 위로하는데 그게 싫었어요. 내가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거 같으니까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잘 안 울거든요. 눈물을 잘 참거든요. 근데 그 때는 좀 울었어요. 그래서 '연기 말고 뭘 할까'라는 생각까지는 했어요. 인·적성 테스트도 해보고, 장사 하려면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아보고, 취직하려면 필요한 게 뭔지도 살펴봤어요. 그런 때 '동주' 시나리오를 만나게 돼요."
 
영화 '동주'의 송몽규 캐릭터 포스터.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안 할 이유가 없었던 '동주'
 
시나리오를 읽었다. 재미는 물론 송몽규라는 인물이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근데 왜 날 시켜준다고 하지?'였다.
 
"못 믿었어요. 송강호, 설경구 이런 엄청난 배우들과 작품 하시는 이준익 감독님이시잖아요. 그런데 박정민? 이런 생각이 든 거죠. 미팅을 하러 가는데 거절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디션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뿔테 안경 쓰고 2:8 가르마를 해서 갔어요. 혹시 모르니까요. 처음 봤는데 감독님이 '송몽규 선생이랑 닮았네. 카하하', '대본 읽었냐? 송몽규 선생 멋있지', '잘 할 수 있겠냐?'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확정이었던 거예요. 어안이 벙벙했어요. 무슨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혹시나 말실수를 해서 캐스팅 안 될까 봐요. 그래서 '시켜주시면 잘 하겠습니다'라고만 했어요."
 
박정민은 송몽규 묘소를 다녀와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부끄러움을 느끼다
 
약 한 달 반의 준비기간이 주어졌다. 대본은 말도 못할 정도로 읽었고, 당시의 시대를 알 수 있는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송몽규가 여러 선택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 송몽규는 공산주의에 빠졌고, 어떻게 빠져나왔으며, 왜 중국과 일본에서 목숨을 걸고 일제와 맞섰는지 궁금했다.
 
"윤동주 평전으로 기본 개요를 열고,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기록물을 엄청 읽었어요.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지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송몽규가 왜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제 상식선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멋있어지는데, 점점 더 멀어지는 거예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서 송몽규 선생의 묘소를 찾아간 거예요. 어떤 흙을 밟았고, 도대체 뭐가 있어서라는 궁금증이 든 거죠."
 
150만원 정도의 사비를 들여 북간도에 있는 송몽규의 묘소를 찾은 그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자신에게서 한심함을 느꼈고,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쌌다.
 
"묘소 앞에 딱 섰는데, 그 순간 제가 너무 한심한 거예요. 그깟 연기 한 번 잘해보겠다고 함부로 이 분들 묘소 앞에 온 거잖아요. 이 분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연기 잘하게 도와달라고 온 거잖아요. 겨우 연기 한 번 잘해보겠다고 이 짓을 한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육성으로 '죄송합니다. 도와주실 거 없고요. 정말 누가 되지 않고 잘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1시간 동안 멍하게 있다가 왔어요. 참회의 시간을 가진 거죠. 그 마음들이 저에게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송몽규를 만나 부끄러움을 느낀 박정민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명확히 알았다고 한다.
 
"아마 묘소를 찾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연기를 잘하려고 뭔가를 했을 것 같아요. 대사를 어떻게 치고 호흡을 어떻게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제게 주어진 건 송몽규에 대한 소개였어요. 이 사람의 뜻을 온전하게 훼손하지 않고 정당성 있게 전달하는 게 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를 잘해서 주목받고 다음 영화 또 캐스팅되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죠. 기회라고요. 이 험난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온전히 표현했다는 평가 하나면 하나도 안 서운할 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송몽규란 사람을 가슴 속에 기억하는 거 하나면 한 번 작년처럼 힘들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배우 박정민은 송몽규를 소개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동주'가 박정민에게 준 영향
 
참회의 시간을 가진 박정민은 다른 작품에서 노력했던 것의 갑절은 될 법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대본이 새까매질 때까지 외우고 송몽규의 삶을 완벽히 파헤치는 것은 물론 한두 문장의 대사로만 나오는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에 대한 시대상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참된 연기가 아니라 대사를 읊는 것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 원래 열심히 해야 연기가 어느 정도 나오는 편이라서 늘 어떤 작품에서든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하긴 해요. '동주'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했죠. 물론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사명감, 책임감, 부담감이 많이 작용하긴 했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기회라고 생각했었고요. 이준익 감독님이 써주는데 '성공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할 순 없잖아요.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그런 건 뒷전이 됐죠. 이걸 훼손하지 않는 것 자체가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연설하는 장면의 배경이나, 윤치호 원장은 어떤 매국을 했는지 등 그 시대 전반을 공부했죠."
 
약 한 달 반을 쉼 없이 '동주'에만 매진한 끝에 그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을 두고 뿌리부터 에너지를 끌고 오는 연기자라고도 극찬했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약 7년 만에 세상에 이름을 내놓은 박정민에게 있어 '동주'는 어떤 영향을 줬을까.
 
"사실 저는 '파수꾼'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동주'라는 고마운 숙제가 생길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또 한 번 저를 이겨내기 위해 발악을 하겠죠. '동주'는 제게 자신감을 줬어요. 개인적으로 저를 봤을 때 천부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변요한, 이제훈 이런 사람들은 천부적인 능력이 있거든요. 그 능력을 주체하지 못해요. 저는 그런 게 없으니까 쌓아올려야 해요. '동주'를 통해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좀 배운 거 같아요. '아 정말 X나게 열심히 하면 나도 좀 되는구나. 나도 뭐가 나오긴 나오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이전에는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하니까 조금은 되는구나를 느꼈어요. 그리고 늘 이 정도로 열심히 해야 된다고도 깨우쳤고요."
 
박정민과 강하늘, 이준익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함께 웃고 있는 모습.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어른' 강하늘과 '기둥' 이준익 감독
 
'동주'에서 눈 여겨 볼 점은 강하늘과의 케미스트리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신경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진짜 좋은 친구끼리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박정민은 강하늘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했다.
 
"하늘이는 저보다 어른이거든요. 저는 저밖에 모르는데, 하늘이는 주위 사람들을 두루두루 다 챙겨요. 그리고 자기 할 일도 잘 하고요. 의지가 많이 됐어요. 저는 현장을 가도 딱딱하게 인사만 하고 들어가는데, 하늘이는 일일이 다 인사하고 안아주고 안부도 묻고 그래요.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하늘이 때문에 화목해지는 게 보이는 거예요. 의지가 많이 됐죠."
 
그렇다면 자신에게 주역을 맡긴 이준익 감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고 물어봤다. 쉽게 형언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기둥 같은 분이세요.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전 연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어요. 여러모로 감사한 분이죠. 제가 마음 내놓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쉽게 형언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감사하죠."
 
박정민은 송강호, 황정민, 이성민, 배성우와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샘컴퍼니
 
황정민·이성민·송강호·배성우의 발자취
 
연기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박정민은 '동주'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꿈을 다시 키워나가고 있다. 최근 진행된 팬미팅에서 한 팬이 남긴 "연기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그를 울컥하게 했다. '암살'을 보고 "난 전쟁이 나면 친일파가 될 거야"라고 말했던 한 친구가 '동주'를 보고 "그 때 그 말 한 거 정말 후회한다"고 한 말에 가슴으로 울기도 했다. 자신의 연기가 주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출발선에 서려 하는 그다. 박정민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들어봤다.
 
"사실 롤모델이라고 할 것은 없어요. 예전부터 꿈꿔왔던 송강호, 황정민, 배성우, 이성민과 같은 배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요. 그들이 어떤 작품을 했으며,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고, 그 결과 어떤 연기를 했는지 그 깊이를 따라가고 싶어요. 제 나름대로 취할 건 취하고 못할 건 빠르게 포기하고, 그러면서 나가려고 해요. 그릇을 키워야겠죠. 아직 가려면 멀었어요."
 
그는 "아직 멀었다"고 했지만, '동주'에서 보여준 그의 퍼포먼스를 보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정진하고 발전한다면 앞서 거론된 배우들의 위상에 어느덧 성큼 다가서 있는 배우로 평가받지 않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며 내공을 쌓아가는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빚어갈지 궁금해진다.
 
함상범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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