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발하며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3일 신청해 시작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민주 측이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29일로 예정된 선거법획정안 처리를 위해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28일에도 더민주 진선미·최규성·오제세·박혜자·이학영 의원과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 등이 필리버스터를 했다. 그 다음으로 10여 명의 의원들이 토론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더민주는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고무된 분위기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27일 밤 '의회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쓴 필리버스터 100시간'이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참여 의원과 지켜보시는 국민들도, 보도하는 언론들 모두 지칠 법도 하지만 관심과 열기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양방향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들의 국회 본회의장 참관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토론에 나서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첫 토론자였던 김광진 의원과 세 번째 토론자인 은수미 의원 등에게는 SNS상 응원메시지와 후원금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신경민 의원의 "이런 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두드리며 통과시켜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책상을 두드리며 토론해야 한다", 정청래 의원의 "북한이 미사일을 쐈는데 왜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핸드폰을 뒤지려 하느냐"는 발언은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테러방지법 처리를 놓고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여전한 상황에서 필리버스터는 한동안 이어질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의 수정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더민주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28일 새누리당에게 "정 의장이 제시한 테러방지법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선거구획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더라도) 바로 필리버스터를 중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법안 내 독소조항을 제거해달라는 것이 더민주의 요구"라며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의장이 중재안을 내놨는데 새누리당이 수용하지 않아 합의를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중재안은 국정원에 정보수집권을 주되 그 발동 요건을 더 엄격히 하는 것으로 통신제한조치(감청)의 경우 발동 요건을 '테러방지를 위해'에서 '국가안전보장의 우려가 있는 경우 테러방지를 위해'로 수정하는 등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정 의장이 최근 자신에게 '국회 법제실의 의견을 양당 협상 때 참고하라고 보낸 것으로 중재안을 낸 적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재안을 지렛대로 여당을 압박한다는 더민주의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필리버스터 정국의 종료 시점은 결국 더민주가 2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선거구획정안) 처리에 나설지 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이날 만장일치로 이번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거구획정안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바로 부의되며, 표결을 위해서는 필리버스터의 중단이 불가피하다.
필리버스터가 중단되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있는 테러방지법도 표결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이는 여당이 테러방지법 수정안 마련에 소극적인 이유다.
선거구획정안을 포함한 쟁점법안 협상에서 "(선거구획정 지연으로 인한) 무법상태를 방치하면서 다른 법안을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획정안의 우선 처리 후 쟁점법안 협상’ 원칙을 지켜왔던 더민주는 '선거구 획정이냐, 테러방지법 저지냐'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한고은·최한영 기자 atninedec@etomato.com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6일째 진행되고 있는 28일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시민들이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의 22번째 필리버스터를 방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