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군수기업인 후지코시에 두번째 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이 9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날 법정에서 후지코시 측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배상 책임을 부정했다.
후지코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10대 초반의 한국인 소녀 1000여명을 일본의 도야마 공장 등에 강제로 끌고가 노동을 시킨 전범기업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재판장 이정민) 심리로 이날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김옥순(87) 할머니 등 5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 측은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며 "그런 취지에서 후지코시에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으며,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다른 사건의 하급심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와 이번 사건에서도 후지코시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후지코시 측은 재판관할권이 한국에 없고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채권이 소멸했으며 소멸시효도 완성됐다고 맞섰다.
다음 재판은 오는 5월11일 10시에 열린다.
앞서, 김 할머니와 박순덕(84) 할머니, 오경애(86) 할머니, 이석우(86) 할머니, 최태영(87) 할머니 등 5명은 지난해 4월 "후지코시의 강제노동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육체적·경제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이번 소송을 냈다. 소송가액은 1인당 1억원씩 총 5억원이다.
한편, 법원은 지난 2014년 10월 김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13명과 피해자 유족 18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피해자들에게 8000만~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5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불법 강제 노역으로 인한 손해 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지난해 4월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차 제소와 미쓰비시, 신일철주금의 재상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옥순 할머니가 증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