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경제는 조선·기계·철강·화학·건설·반도체·자동차·휴대폰 등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가며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뤄 왔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대기업들이 주도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및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성장을 이끌었던 대기업들이 좀처럼 새로운 도약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거시적인 경제흐름 측면에서 저성장·저금리·저소비와 높은 실업률, 1인가족 증가 및 고령화 등 새로운 경제 질서가 고착화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또한 사회상의 미시적 변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소비자의 요구가 점점 다양화·구체화·고도화되면서 기업도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범용적 욕구를 대량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의 전통적 대기업 비즈니스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헬스케어, 문화산업, 정보통신, 첨단 IT 등 삶의 질을 섬세하게 고양시킬 수 있는 대체 혁신산업이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잡게 됐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환경 변화에 맞추어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혁신산업 중심으로 재편돼야 저성장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혁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우선 든든한 자본공급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하에서는 결국 자본이 있는 곳으로 경쟁력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신산업을 위한 자본공급 인프라는 창업 초기 투자부터 최종 회수 단계까지 종합적인 생태계 측면에서 고려돼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금융당국이 초기기업 자금조달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중간 회수 통로인 중소기업간 M&A시장 활성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혁신산업 벤처생태계의 완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역시 코스닥이다. 벤처기업 및 벤처 투자자가 부담한 노력과 리스크가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회수시장이 코스닥이기 때문이다. 코스닥시장이 혁신기업을 보다 폭넓게 수용할수록 그 여파는 벤처생태계의 제일 앞단인 창업 및 엔젤투자 활성화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코스닥시장 내의 산업구조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편돼 가고 있다. 2001년에 2% 미만이었던 바이오 업종의 시가총액 비중이 2015년에는 16% 수준으로 증가했고, 현재는 정보통신(IT)·바이오(BT)·문화컨텐츠(CT) 등 신성장산업 비중이 60%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13년까지 10여개에 불과했던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우량기업도 20여개 수준으로 증가했다.
앞으로 코스닥시장은 우리 경제의 혁신을 위해 두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우선, 보다 많은 혁신형 성장기업들을 시장에 수용해야 한다. 그간의 꾸준한 상장활성화 노력으로 최근 2년간 신규상장 기업수가 급증했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코스닥 상장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좀 더 다양한 기업들이 코스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문호 확대 과정에서 함량 미달 기업들의 무분별한 상장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기술평가 등 정교한 옥석구분 장치가 원활히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코스닥시장이 혁신형 기업들의 성장의 장으로서 역할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시장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작은 기업들이 상장된 시장'이 아니라 '기술주 중심의 메인보드(Main Board)'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는 단지 코스닥시장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업구조 재편을 통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측면에서도 긴요한 과제이다. 대형 우량 기술기업의 상장으로 코스닥시장의 외연과 체력이 보강되면, 기관 및 외국인투자자를 시장으로 적극 유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성장형 기업들의 자금조달 기반도 강화됨으로써 산업구조 개편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신기술 기업인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 등은 모두 전통증시인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아닌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나스닥으로 이어지는 확고한 벤처 성장 루트가 미국의 경제혁신을 이루어냈듯이, 이제 우리 코스닥시장이 중소, 벤처기업을 포함한 모든 성장형·기술형 기업을 위한 또 하나의 메인보드로 발전해 한국 경제구조 재편의 견인차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재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