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갈등이 비례대표 선정을 두고 폭발한 가운데 이번 파동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리더십에는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은 21일 “비대위가 비례대표 후보 전체 35명 중 20%에 해당하는 7명을 순위에 배치하고 나머지 28명에 대해서는 칸막이를 트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더민주 중앙위원회에서 그간 수면 아래 잠복해있던 공천과정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오자 '수정안'을 만든 것이다. 비례대표를 A그룹과(1~10번)과 B그룹(11~20번), C그룹(21~43번)으로 나누고 그룹 내에서의 순번만 정할 수 있도록 한 지도부의 결정은 중앙위원들의 반발을 샀고 회의는 30분만에 정회됐다.
그에 따라 비대위가 비례대표 선정 규칙을 하루 만에 손봤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김 대표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21일 오전 캐주얼 차림으로 서울 구기동 집을 나서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더 이상 정치, 정당에 대해 이야기 안할테니 묻지 말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국회가 아니라 광화문에 위치한 개인사무실로 출근한 김 대표는 그곳에서도 기자들에게 “사람을 인격적으로 그 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 가서 일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성수 대변인은 “본인이 2번에 배치됐던 것은 총선 승리를 위해 본인이 얼굴이 되어 선거를 지휘할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후 새 지도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당의 변화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김 대표 본인이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고 그 과정에서 상위권 순번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각에서 ‘노욕을 부린다’는 식의 비판이 쏟아지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김 대표는 이날 예정된 비대위와 중앙위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무를 거부했다.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이 비례대표 후보에서 제외됐지만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등 문제 인물의 공천이 이뤄진 점을 두고 비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비례대표 후보 선정 및 투표방식 변경은 김 대표를 제외한 다른 비대위원들이 논의한 후 이중 일부가 김 대표를 만나 설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가 본인을 비례 2번에 ‘셀프공천’한 이유로 내세웠던 ‘총선 승리를 위한 지휘 측면의 필요’에 대해서도 진정성의 의심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뱃지 달겠다고 자기 순위를 자기 권한으로 두 번째에 올려놓다니 참 분석 대상이다.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나”며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대표 취임 초기 비례대표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해왔던 것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데 있다. 또 2번 배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돈이 없어서 앞 번호을 못받고 12번을 받았으니, 여러분이 안 찍어주면 국회에 못갔다'고 말한 바 있다"고 말한 것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당 김희경 대변인은 “김 대표의 발언은 고인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더불어민주당의 역사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구기동 자택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