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총선에 출마할 비례대표 후보 2번에 본인을 배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민주는 20일 비례대표 43명 후보자 명단을 당선가능성에 따라 A·B·C 등급으로 나눠 발표했다. A그룹과 B그룹의 앞순위는 당선안정권, 그 뒤의 그룹은 중앙위 투표 결과에 따라 당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중 당선이 확실시되는 A그룹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1번,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6번, B그룹 송옥주 당 정책실장은 13번을 부여받았다.
김 대표는 A그룹 2번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의 비례대표 안정권이 15번 안팎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5번째 비례대표 입성은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여야를 넘나들며 지역구 당선은 한번도 없이 비례대표로만 5선이라는 진기록 달성을 코앞에 두게 됐다.
정가에서는 그동안 김 대표의 비례대표 출마 여부에 주목했다. 당초에는 김 대표가 총선 때까지만 당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가 비례 2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유는 총선 이후에도 당에 남아 정치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선 때까지 당을 이끌고 나가면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성수 대변인은 “우리 당이 총선 끝난 이후에도 좀 더 변화된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김 대표) 본인이 원내 진입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례 2번에 배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김 대표 주도로 이해찬, 정청래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더민주 핵심 지지층의 불만이 커진 상태에서 스스로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차지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다시 한번 실망감을 안겨주게 됐다. 지지층 결집에 역효과를 주는 행보라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15번을 배정받는 배수진을 치며 선거에 임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비례 11번을 받았고, 민주통합당(현 더민주)의 한명숙 대표는 비례 15번을 받았다. 과거 전직 대표들의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김 대표의 2번은 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더민주의 김광진 의원은 “상식이 통하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는데 오늘 김 대표의 셀프 전략공천은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며 “비례대표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 올라간 인사 상당수도 도덕성과 정체성 등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경미 교수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이 일었던 적이 있어 도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A그룹의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아들이 방산 관련 비리를 일으켰던 업체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운열 교수는 론스타 ‘먹튀 논란’에서 론스타를 옹호한 일간지 기고문이 문제가 됐다. A그룹에 속한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한 언론에 올린 칼럼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자살로 자신의 과오를 묻어 버린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또 비례대표 후보군에는 그동안 야당이 당선가능권에 배치해온 장애인, 청년 등 사회 취약계층과 소수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부정 경선’ 논란이 일었던 청년비례 선출이 흐지부지 됐는데도 청년 몫 비례대표로 정은혜 전 더민주 부대변인을 선정한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다.
더민주는 이날 비례대표를 최종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열었지만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두고 격한 반발이 나왔다. 지도부는 비례대표 후보군을 A·B·C그룹으로 나눠 후보자 순위를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려 했지만 일부 중앙위원들이 당에서 전략적으로 지정하는 후보 외에는 칸막이를 헐고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더민주는 결국 중앙위를 오는 21일 재개하기로 했다.
김종인 대표는 중앙위 입장 전 기자들과 만나 ‘비례 2번이 된 것에 문제가 제기된다’는 질문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라며 일축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자리를 뜨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