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대법원이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만기일 직전 기초 자산을 대량 매도한 도이치 은행의 행위를 시세조종 행위로 규정하고 투자자들에게 상환금을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4일 한국투자증권의 ELS 상품에 투자한 김모씨 등 26명이 "시세조종 행위로 인한 손해액 18억1500여만원을 돌려달라"며 도이치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만기 평가일에 KB금융(전 국민은행) 주가가 손익분기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도이치 은행은 종가를 낮춰 수익상환 의무를 면하고자 할 동기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또 "도이치 은행은 주가가 올라간 오후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특히 단일가매매 시간에 이르러서는 기준가격을 근소하게 넘어서는 시점마다 반복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이치 은행의 이 같은 주식 대량 매도는 ELS와 관련해 수익 상환을 피하기 위해 종가를 낮추는 시세조종 내지 부정거래 행위"라며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김씨 등은 만기 평가일에 KB금융과 삼성전자의 보통주 종가가 모두 기준가격의 75% 이상일 경우 원금과 투자수익금을 상환하는 한국투자증권의 ELS 상품에 투자했다. 다만, 두 종목 중 한 종목이라도 기준가에 이르지 못하면 원금 손실은 투자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김씨 등에게 판매한 ELS 상품과 동일한 형태의 '주식연계 달러화 스와프계약'을 도이치 은행과 체결했다. 향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해야 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만기 평가일인 2009년 8월26일 무렵 삼성전자 주가는 기준가격의 75%를 크게 상회했으나 KB금융의 주가는 75%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도이치 은행은 만기가 다가오기 전부터 KB금융 주식의 매도와 매수를 반복했고, 만기 평가일 오후가 되자 14회에 걸쳐 총 10만6032주를 매도했다. 단일가매매 시간에 이르러서는 KB금융의 주가가 75%를 근소하게 넘어섰지만 도이치 은행은 계속해서 2회에 걸쳐 합계 12만8000주를 매도했다.
이에 따라 KB금융의 종가는 기준가격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원금 손실 부담을 떠안게 된 김씨 등은 "도이치 은행의 시세조종 행위로 수익금 지급이 무산됐다"며 상품을 발행한 한국투자증권이 아닌 백투백 헤지(back to back hedge) 거래를 담당한 도이치 은행을 상대로 지난 2010년 3월 소송을 냈다.
1심은 "도이치 은행의 KB금융 주식 대량 매도 행위는 자본시장법상 시세를 변동시키는 세세조종 행위"라며 원고승소 판결했으나, 2심은 "투자자에게 지급할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시세조종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날 대법원 관계자는 "백투백 헤지 ELS에서 수익 만기상환 조건이 충족되지 않도록 기준일에 기초 자산을 대량 매도하는 경우 그 ELS 상품을 매수한 투자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시한 선례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백투백 헤지란 증권사가 자신들이 발행한 ELS 상품과 거의 동일한 조건으로 다른 증권사나 투자은행 등과 장외 파생거래를 맺어 기초자산 가격 변동 리스크 등을 거래 상대방에게 전가시켜 투자 손실을 회피하는 방식을 말한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