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성재용기자] 아파트의 내력벽을 허물지 못하도록 규정해 온 국토교통부가 최근 수직증축이 가능한 리모델링 건물에 한해 내력벽을 허물어도 되는 기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리모델링 활성화가 이유지만 안전 문제 등이 산재해 있어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일각에는 총선을 겨냥한 민원처리용 정책이 아니냐는 눈총을 보내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이달 말부터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가구간 내력벽 일부를 철거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종전에는 가구간 내력벽 철거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한 층에 6가구가 있는 동을 5가구나 4가구로 줄이는 게 불가능했다. 때문에 소형아파트를 중대형으로 전환하거나 2베이에서 3베이로 전환하기가 어려웠다. 베이는 아파트 전면부에 배치된 방이나 거실 등 벽면으로 나뉘어 독립된 공간의 수를 말한다. 아파트 전면이 보통남향인 점을 감안하면 베이가 많을수록 빛이 잘 들어오고, 환기와 통풍에도 유리하다.
뿐만 아니라 각 공간마다 발코니가 따라 붙는 만큼 확장시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은 서비스면적을 많이 받을 수 있어 소형아파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게 된다.
최재윤 미담건축 대표(건축사)도 "사업을 추진하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은 평면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수직증축 리모델링시 기존 가구를 앞뒤로만 증축하면 채광, 조망 등에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좌우로도 증축하면 거주자들이 선호하는 4베이 최신 평면도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내력벽의 일부 철거와 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란이 적지 않다. 가장 큰 숙제는 내력벽이 건물 하중을 버티는 사실상 기둥 역할을 하고 있어 철거에 안전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수직증축의 경우 위로 3개층까지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수직증축을 하면 그만큼 내력벽이 받은 하중이 커지는데, 반대로 모든 가구가 내력벽을 20~30%씩 허물 경우 아파트 구조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건물 하중을 측정하는 '내력비'의 하한치를 1.0 이하에서 0.8 등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내력비 하한치를 너무 낮출 경우 보강 문제 때문에 건축비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내력벽 철거비율도 관건이다. 한국리모델링협회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조합 측은 50% 철거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허용치는 30% 이내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가량 가구간 너비 10m짜리 벽이 있다면 3.3m만 철거가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 관련 연구기관이 경기 성남시 '한솔5단지' 내력벽 가상도를 만들어 본 결과 가구간 내력벽은 문을 여닫을 수 있을 정도만 허용될 것으로 분석됐다.
2013년 주택법 개정으로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가능해진 이후 줄곧 안전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지켜온 국토부가 구체적인 설명도, 세부기준도 없이 내력벽 철거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나선 것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최봉문 목원대 교수(도시공학)는 "국토부는 그동안 반대해왔던 이유를 뒤집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서두를 문제가 결코 아닌데도 갑자기 몇 개월 만에 시행령을 개정, 내력벽 철거를 허가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시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초선을 앞두고 정부가 '표심잡기'용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 야권 인사는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전에 대한 부분은 수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충선을 앞둔 시점에서 시행령을 입법예고 한 저의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내력벽 철거 개념도. 자료/한국리모델링협회
성재용 기자 jay111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