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에서 투신 사망…법원 "유족에게 보험금 지급해야"

항소심 "보험 면책사유 안돼"…1심 깨고 일부 승소 판결

입력 : 2016-03-2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보육교사로 근무하던 A(32·여)씨는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 대인 관계와 업무처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매주 월요일마다 교사들이 한 명씩 번갈아가며 회의를 진행하는 일도 A씨에겐 부담됐다. 편집성 정신분열로 5년여간 87회의 정신과 통원치료를 받아오기도 했던 그녀는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A씨는 2014년 5월19일 오전 8시경 어린이집 원장에게 일을 그만두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인근의 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딸이 계속 일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전화 연락에 마음이 흔들렸다. A씨는 어린이집까지 자동차로 태워주겠다는 부모의 말에 아무런 반항 없이 뒷자석에 탔다.
 
그날 오전 10시쯤 부친이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A씨가 갑자기 뒷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머리를 크게 다친 A씨는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10여일 후 사망했다. A씨의 장례를 마친 부모는 자동차종합보험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B보험사를 상대로 2014년 7월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보험사는 사고가 A씨의 고의로 발생했다며 보험약관상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의 부친이 보험사와 맺은 약관에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그 본인이 상해를 입은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책임의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이에 A씨의 부모는 "A씨가 사고 이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던 상태였다"며 "어린이집에 다시 출근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뛰어내려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1심은 "A씨가 당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지만 차문을 열고 그대로 뛰어내렸다"며 "이는 보험금 지급책임의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또 "A씨가 사고 무렵 특별히 정신과적 이상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점과 사회복지사 2급과 보육교사 2급 자격을 취득해 2013년 3월경부터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한 점 등을 고려하면 사망의 위험성을 예견조차 못할 정도의 정신적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 7부(재판장 예지희)는 "A씨 부모에게 47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A씨는 기존의 정신병적 질환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어린이집에서 자신이 진행해야 할 회의에 대한 부담 등으로 상당한 심리적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어느 정도 큰 상해를 입는다는 것을 인식·용인하면서 뛰어내렸다고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사망의 결과까지를 인식하고 용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아무런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채 자동차에 탑승해 가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려 사고가 발생한 점이나 A씨와 부모와의 관계 등을 모두 고려하면, 공평한 손해부담을 위해 보험사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1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 사진 / 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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