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흘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지역은 단연 대구광역시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새누리당의 텃밭인 이곳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낸 유승민 의원은 후보 등록 전날까지 공천을 받지 못해 결국 탈당하고 대구 동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대구 수성갑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20년만에 대구·경북에 야당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관심이 높다. <뉴스토마토>는 지역 민심을 듣기 위해 31일 대구를 직접 찾았다.
◇ "유승민 탈당 어쩔 수 없지 않나" vs "한번 쉬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 유 의원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어쩔 수 없지 않나”라는 동정론과 “그래도 무소속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날 대구공항 공항교 근처에서 열린 유승민·류성걸·권은희 의원의 공동출정식을 멀리서 지켜보던 김모(28·대학생)씨는 “공천 과정이 좀 그렇지 않았나? 오죽했으면 무소속으로 나왔을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유 의원이 당선된 후에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진박’ 논란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택시기사 이영섭(50대)씨는 “예전에 친이계에 공천 학살당했다고 그렇게 떠벌리고 다녔으면서 자기도 똑같이 했으니 문제”라며 “인물을 따져도 이재만(전 새누리당 예비후보)이 공천을 받았어도 유승민에게는 택도 없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유 의원이 대통령과 척을 지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한번 쉬고 다음에 출마했다면 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금강호 근처로 자전거를 끌고 나온 박모(50대)씨는 “유승민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소속으로 나온 것은 좀 잘못됐다. 오히려 이번에 한번 쉬고 다음에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박영호(40대)씨도 “찍을 사람이 없으니 유승민이 당선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며 “이재만이 공천 받았으면 박빙이었을 것이다. 원내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대통령의 국정을 도와야지”라고 비판했다.
정치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40대 여성 최모씨는 “정치에 대해 묻지 말라.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냥 선거할 때만 나와서 이야기하지 당선되면 지역을 외면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승천 후보가 동을 출마를 선언하고 표밭을 갈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우방 강촌마을에 있는 목요시장과 불로동에 있는 불로시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후보 측은 출마가 무산된 이재만 지지자들의 반발과 유 의원이 박 대통령과 부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당의 여론이 분열되면 해볼만 하다는 것이다.
◇ "김부겸 이번엔 되어야지" vs "뚜껑 열어봐야 알지..."
대구 수성갑에 가보니 김부겸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다소 많이 들을 수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특히 선거에 지고도 지역을 바꾸지 않고 대구에서 ‘백의종군’했다는 점이 지역민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긍정 포인트'였다.
신매시장에서 우산을 파는 최모(40대)씨는 기자가 질문을 하자 과거 새누리당 당원이었다면서도 “이제는 바꿔야 된다. 나는 김부겸 후보 적극 지지한다. 나는 사람의 진정성을 본다. 선거에 떨어지고도 지역을 바꾸지 않고 여기에 계속 있다는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며 “김문수(수성갑 새누리당 후보)가 갑자기 대구 내려와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덮어놓고 새누리당만 찍어주는 대구의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성찰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후보들이 새누리당 간판만 들고 나오면 당선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구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매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는 염모(50대)씨는 이런 상황을 재혼 과정에 비유했다.
"자식들이 좀 까다롭게 굴어야 양아버지나 양어머니 될 사람이 저쪽 애들 마음을 얻으려고 자꾸 뭘 사주기도 하고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그런데 자식들이 물러 터지면 새아빠나 새엄마 될 사람은 그들을 쉽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구가 물러터진 자식처럼 그렇게 행동해 왔다. 이제는 좀 바꿔야 된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김부겸 후보를 지지하지만 전통적인 여당의 텃밭인 대구이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여론조사 등을 통해 김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투표소에 들어가면 역시 1번을 찍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구라는 것이다.
신축 건물 공사장 인부인 50대 한 남성은 “여론조사는 그렇게 나오지만 대구는 모르는 거다. 괜히 대구가 아니다”라며 “실제 투표소에 들어가서 1번을 찍고 나올 사람들이 많다. 특히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아무리 그래도 야당을 찍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다산노인복지관에서 주차 업무를 하던 70대의 한 남성은 기자에게 “김부겸은 더불어민주당이기 때문에 안된다. 당이 문제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며 “대구가 생각 없이 여당만 찍는다고 하지만 전라도는 더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구에서도 세대 갈등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기자가 취재를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수성구 신매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40대 상인이 김부겸 후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60대 여성이 “그래도 전라도당은 찍어주면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그 젊은 상인은 “할머니, 요새 전라도당이 어디 있습니까. 다 똑같습니다”라고 말을 받았다.
대구=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20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 의원(가운데)과 류성걸 의원(왼쪽), 권은희 의원(오른쪽)이 31일 대구 공항교 뚝방 근처에서 공동 출정식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대구 신매역 사거리에 걸려 있는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 현수막. 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