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여전한 한국영화계에 두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신작이 나왔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제목의 영화 '해어화'다. 두 여배우는 2013년과 2014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효주와 천우희다. 연기력을 단단히 쌓아온 두 사람은 '해어화'에서 만개한다.
영화 '해어화'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일본의 제국주의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기생을 키워내는 학교인 대성권번을 배경으로 한다. 명창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최고의 소리꾼으로 인정받은 소율(한효주 분)과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대성권번에 팔린 연희(천우희 분)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노래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두 사람은 대성권번 최고의 졸업생이 된다.
소율과 연희는 예인으로서 정가(가곡)를 익혔지만, 대중가요를 흠모한다. 특히 최고의 가수 이난영(차지연 분)을 존경한다. 소율의 정인이자 이름을 숨긴 채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활동 중인 윤우(유연석 분)는 이난영을 소율과 연희에게 소개시켜 준다. 이난영과의 만남으로 인해 두 여인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윤우는 힘 있는 자들을 위한 정가보다 힘없고 약한 백성들을 위로하는 대중가요가 더 훌륭하다고 여긴다. 그런 중 윤우는 우연히 연희의 노래를 듣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소율이지만, 자신의 곡을 최고로 표현해줄 이는 연희라 믿는다. 소율 역시 대중가수로서의 꿈을 꿔보지만, 가수로서의 재능은 연희에 못미친다. 소율의 질투심을 느낌에도 결국 윤우는 연희를 설득해 가수로 키워낸다. 윤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율은 연희와 윤우 사이에서 질투심과 열등감, 소외감을 느끼지만, 두 사람을 격려하고 축하한다.
소율이 참고 견디는 사이 윤우의 마음은 연희로 향해간다. 그러던 중 소율은 윤우가 연희에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다른 사람은 품에 두지 않을 것"이라 맹세한 윤우와 절친이었던 연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참고 인내한 마음은 분노가 된다. 당대 최고의 권력인 총독부 경무국장(박성웅 분)을 찾아가 몸을 맡긴다. 그리고 사랑했던 남자와 친구에게 절망을 안긴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망가진다.
한효주 캐릭터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두 여자의 심리에 더 집중한다. 사랑에서 증오로, 우정에서 배신으로 변하는 소율의 감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다만 심리 묘사나 상황 설정에서 다소 작위적이고 촘촘하지 않은 지점이 여럿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시대상을 담지 않는 데다 인물 간의 갈등에 대한 설득력이 다소 부족함에도 영화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 이유는 오롯이 한효주와 천우희 덕이다. 두 여배우는 빼어난 연기로 영화에 짙은 감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두 여배우는 마치 연기력 대결이라도 펼치듯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우위라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훌륭하다. 심지어 노래 실력으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작품마다 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여준 한효주는 가증스럽고 못된 표정을 지으며 변신을 시도한다. 현실감 있는 표정으로 어둡고 힘겨운 심정을 주로 표현해온 천우희는 데뷔 이후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두 여배우 모두 기존 자신의 틀을 벗어난 매력을 선보인다. '해어화'는 남성 위주 서사로 점철된 한국 영화계에 여자의 맞대결도 강렬한 쾌감을 줄 수 있음을 알린다. 일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해어화'만이 갖춘 미덕은 분명하다.
한효주와 천우희뿐 아니라 뻔뻔한 윤우의 얼굴을 표현한 유연석도 제몫을 다한다. 능수능란한 일본어 연기를 보인 박성웅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며, 기생 선생인 장영남도 빛난다. 개봉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4월13일이다.
천우희 캐릭터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플러스(+) 별점 포인트
▲'청룡의 꽃' 한효주와 천우희의 맞대결 : ★★★★
▲'복면가왕' 출연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 노래 실력 : ★★★★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만한 당대 노래들 : ★★★
▲여자친구의 친구와 사랑을 나누고도 죄책감 없는 유연석의 얼굴 : ★★
▲등장할 때마다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은 장영남 : ★★
▲당시를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 같은 화면 : ★★
▲흉내내기조차 힘든 백현식의 독특한 화법 : ★
◇마이너스(-) 별점 포인트
▲몰입을 심하게 방해하는 한효주의 노인분장 첫 신 : ☆☆☆☆
▲'꼭 필요했을까?'라는 의문만 주는 매우 긴 에필로그 : ☆☆☆☆
▲중간중간 엿보이는, 개연성 없는 감정 과잉 : ☆☆☆
▲서로 간의 배신감을 증폭시키려는 의도가 매우 엿보이는 작위적인 상황 설정 : ☆☆☆
▲일제강점기 시대상의 소극적 활용 : ☆☆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