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예쁜 쓰레기', '아무나 쓸 수 없지만 한 번 쓰면 헤어나지 못하는 폰'
느낌이 오는가. 블랙베리 이야기다. 블랙베리 폰 앞에 이 같은 수식어가 붙는 것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디자인을 갖췄지만, 기능이나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 모든 건 블랙베리가 자체 운영체제(OS)를 사용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국내에서 그 어떤 스마트폰을 구입해도 안드로이드나 iOS가 탑재된 게 지겹게만 느껴지던 어느 날, 해외직구를 블랙베리를 구입했다.
블랙베리 패스포트는 제품명처럼 여권 크기와 같은 사이즈를 지니고 있다. 사진/ 임애신기자
이름대로 이 제품은 실제 여권크기와 같다. 여권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를 갈 수 있 듯 블랙베리 패스포트를 가지고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블랙베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쿼티 자판이다. 쿼티자판은 PC나 노트북에서 사용하는 키보드와 자판 배열이 같다. 패트포트에 영어만 각인돼 있으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사설업체에 한글각인을 요청하면 영어와 한글을 같이 볼 수 있게 새겨준다.
터치 키포드에는 한글과 알파벳을 제외한 기호와 숫자가 있다. 또 타이핑 도중 화면에 예상되는 내용이 뜨기 때문에 빠른 입력을 도와준다.
블랙베리의 쿼티 자판은 물리적 키보드뿐 아니라 터치키보드도 지원한다. 사진/임애신기자
기자의 경우 한글 각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0년 넘게, 매일 같이 노트북을 사용해 왔지만 막상 영어로만 된 자판을 치려고하니 일종의 전환과정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Q가 ㅂ 맞지?' 이런 것인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적응된다. 그러다 술 마시면 오타가 남발된다는 게 함정이지만. 이 모든 건 3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소된다.
패스포트 쿼티 자판에는 비밀병기가 하나 숨어 있다. 터치 인식이 된다는 점이다. 물리적 키보드와 터치 키보드가 조합됐다고 보면 된다. 글을 읽을 때 화면을 스크롤하는 대신 쿼티자판에서 조작하면 된다. 처음엔 왜 이런 기술을 적용했을까 싶었지만 사용하다보니 이해가 됐다.
카톡을 사용하다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싶을 때 다른 휴대폰의 경우 돌아가기 버튼이나 홈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패스포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로 올리면 없어지는 형식이다. 때문에 가끔 화면 스크롤하면서 기사를 읽다보면 손가락 터치를 잘못 인식해 화면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쿼티로 화면을 올리면서 읽으면 편하다.
사진/ 블랙베리
쿼티자판과 더불어 블랙베리 패스포트를 다른 폰과 차별화하는 디자인적 요소는 화면 비율이다. 4.5인치 디스플레이지만 가로 90.5mm, 세로 131mm로 일반 폰에 비해 가로가 넓다. 그래서 '손에 쥐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두께가 9.25mm에 불과해 그립에 큰 부담이 없다.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불편하지만 그 밖에 애로사항은 느낄 수 없었다.
또 패스포트는 둥글둥글한 다른 블랙베리폰과 다르게 네 귀퉁이가 직각이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비상시 호신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손색 없다. 외관도 견고하다. 기자는 평소 손에 힘이 없어서 아무리 그립감이 좋고 파지가 좋은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하루에 네 번 이상은 떨어뜨린다. 패스포트를 사용하는 5개월 동안 수십 차례는 떨어뜨린 것 같다. 그럼에도 육안상으로는 하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반응 속도나 애플리케이션 실행이 자연스럽다. 퀄컴 스냅드래곤 801 쿼드코어 2.2GHz에 램 3GB, 저장공간 32GB에 마이크로SD카드 슬롯을 곁들였다. 웬만한 고사양 스마트폰과 비교해도 아쉬울게 없다. 다만 부팅 속도는 놀랍도록 느리다.
배터리는 일체형이다. 평소 폰 사용시간이 길어서 탈착식 배터리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패스포트는 3450mAH의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서 사용에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블랙베리 허브는 유용하다. 블랙베리가 왜 기업용 스마트폰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마트폰에서 여기저기 헤맬 필요 없이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페이스북, 통화기록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며 우선순위를 정해 알림을 받을 수도 있다.
최근 카톡 감청 논란이 일면서 텔레그램으로의 디지털 난민이 또 다시 늘고 있다. 블랙베리 사용자라면 이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블랙베리 폰에는 기본적으로 블랙베리메신저(BBM)가 설치돼 있다. 이는 비교적 보안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문자가 암호화돼 전송된다고 한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국내에서 공식 출시된 게 아니기 때문에 몇가지 사용 제약이 있다. 폰 분실 시 위치를 검색해주고 원격 데이터 삭제 및 잠금이 가능한 '블랙베리 프로텍트'는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 음성인식 서비스인 '블랙베리 어시스턴트' 역시 한국어 인식이 안된다.
블랙베리 애플리케이션이 있는 '블랙베리 월드'. 사진/임애신기자
가장 아쉬운 점은 블랙베리의 생태계다. 패스포트는 블랙베리OS 10.3을 지원하는데 '블랙베리 월드'라는 앱 스토어는 들어가보니 처참하다. 멸종이라고 불러도 미안하지 않을 수준이다. '아마존' 앱을 통해서도 다운받을 수 있는데 쓸만한 무료 앱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카톡, 페이스북, 지도, 메일 등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편법이긴 하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된다. 처음에는 너무 복잡해보여서 '멘붕'이 왔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다보면 되지만 IT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길 권한다.
원래 게임은 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은 모르겠지만 일부 인터넷 은행 관련 앱과 포털의 카드뉴스, 뉴스 푸시 알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용된다.
블랙베리 패스포트 외관. 사진/ 블랙베리
카메라는 불만족스럽다. 전면 200만, 후면 1300만 화소를 지원하는데, 정지된 피사체조차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움직이는 대상에 대해서는 아예 촬영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셀피에 HDR을 적용하면 얼굴이 세개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센서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도 불편하다.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둬도 센서가 작동해서 화면이 켜진다. 이후 이것저것 눌리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전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걸려 있다는 점이다. 블랙베리를 사용한 후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해서 평소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비밀번호를 걸고 사용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블랙베리는 단점만큼 장점도 크다. 역으로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있다.
패스포트의 경우 연동성이 떨어져 푸쉬알람이 지원되지 않는 앱들이 몇몇 있다. 여기저기에서 난무하는 알림을 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블랙베리가 해방감을 준다. SNS, 포털 검색 등 무난한 기능들의 앱을 사용하면서 도·감청 등 보안에 예민한 사람, 빠르고 정확한 쿼티 키보드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패스포트를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