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읍소로 연명 말고 '정치상품'을 팔아야

입력 : 2016-04-12 오전 6:00:00
20대 총선에도 예외 없이 표를 구걸하는 후보들의 읍소 행렬이 등장했다. 온정적인 한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동정표를 구하려는 정치인들의 한심한 전략이 이번에도 먹힐지 자못 궁금하다. 유권자들이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한 표를 잘 행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따름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도와달라’며 표를 구걸했다. 이를 본 한 연예인은 “앵벌이도 껌 정도는 내밀면서 도와달라고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지난번 보다 더한 풍경이 나타난다. 김무성 대표는 유세장에서 여전히 ‘도와달라’고 애걸하고, 새누리당 후보들은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을 부르는가 하면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고 ‘미워도 버리지만 말아 달라’ 큰절을 올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선거 때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전락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고 했던 직접 민주주의의 신봉자 장 자크 루소가 살아 돌아와 한국의 이 모습을 지켜본다면 박장대소 했을 게 분명하다. 세계 최고의 특권과 권력을 누리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선거철만 되면 큰절 퍼포먼스를 벌이고 유권자에게 애원하는 풍경은 그들의 금배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런 우스꽝스럽고 품격 떨어지는 행태가 한국의 선거문화로 굳어져 가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치도 하나의 마케팅이다. 제대로 된 상품을 팔아 표심을 살 생각을 해야지, 짠한 동정심이나 유발하는 정치로 언제까지 연명할 것인가. 선거는 유권자에게 한 표를 구걸하는 동냥이 아니고 정치적 상품을 파는 하나의 마켓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 이러한 선거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구하려 정책·공약 개발에 사활을 걸고 아이디어 경쟁을 벌인다. 선거철이면 자존심 내팽개치고 읍소에 나서는 우리 정치인들과는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은 유권자들에게 읍소하기보다 선물을 주는 퍼포먼스로 정치를 이끈 아이디어맨이었다. 그는 미테랑 초기 정부인 1984년부터 매년 9월 셋째 주말을 ‘문화유산의 날’로 정해 프랑스 국민들이 무료로 맘껏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때 시민들은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을 비롯해 부르봉궁전, 룩셈부르크궁전, 마티뇽 수상관저, 루브르 박물관 등을 방문해 그 곳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랑 전 장관은 이밖에도 음악 축제의 날을 만들어 시민들의 숨통을 터주고 거리의 악사들이 프로 음악인으로 발굴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고 미테랑 정부를 14년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험난한 시대에 생활고로 짓눌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만 하지 말고 선물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를 위해 정치도 기업처럼 고객 유치를 위해 치열한 아이디어 개발에 진력해야 한다. 계파 간 싸움에 시간만 날리고 빈손으로 선거판에 나와 ‘도와주십시오’ 외치기만 하면 유권자는 어찌하란 말인가. 경제 선진국인 한국에 정치가 이토록 빈곤하다니 서글플 뿐이다.
 
정치권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당당히 상품을 팔아야 하고, 유권자는 온정적 투표 행태를 멈추어야 선거 문화가 향상될 수 있다. 그래야 유권자가 노예가 아니라 왕이 될 수 있다. 한국 선거가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했으면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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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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