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보험이란 재해나 사고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공동체가 미리 돈을 모아 재산을 형성하였다가 사고 피해자에게 나눠주는 보상적 개념이다. 보험은 가입자들의 정직성이 필수적이다. 미리 거두는 돈을 얼마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보험료의 책정은 기본적으로 사고 발생의 확률에 근거한다. 사고가 이미 발생했거나 사고 발생에 임박한 사람 또는 확률이 매우 높은 사람이 그 사실을 숨겼다가 보험금을 타낸다면 다른 선량한 가입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 허위로 사고가 난 것처럼 꾸며서 거액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하자. 이런 사람들은 보험사를 상대로 사기행위를 한 것이므로 사기죄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받아낸 거액의 보험금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선량한 다른 보험 가입자들이 낸 돈이다. 즉 보험사기의 궁극적 피해자는 보험사가 아니라 보험 가입자다.
생명보험의 경우 보험사기가 흔하지도, 쉽지도 않다. 보험 가입자가 사망을 해야 보험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실비보험은 다르다. 의료비를 지출했다고 의료기관으로부터 확인서만 받아서 제출하면 보험사로부터 보험료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사례를 보자.
최근 어느 한의사가 허위로 진단서와 치료확인서를 끊어준 대가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4억5000만원을 받았다가 징역형을 받았다. 실비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사기 제안을 먼저 한 것은 한의사였다. 한의사는 처음 이 한의원을 찾은 어느 주부에게 70만원을 주면 허위진단서를 발급해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 환자는 제안에 응해 보험사로부터 228만원을 받아냈다. 이 한의원의 직원도 멀쩡한 자녀 앞으로 허위진단서를 발급받아 540만원을 챙겼고, 어느 여대생은 11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렇게 총 70여명이 보험사기에 가담했는데 처벌은 가벼웠다. 5명에게만 실형이 내려졌을 뿐 65명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 보험사기 사건은 무수히 많은 유사 보험사기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 전에는 특전사와 해병대 등 전·현직 특수부대원 1600여명이 가담한 대규모 보험사기 사건이 방송에 보도돼 충격을 줬다. 또 일부 의사가 아닌 사무장이 경영하는 병의원에서는 도수치료 명목으로 영수증을 끊고서는 미용시술을 해주는 편법으로 환자를 모으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런 보험사기 사건에서 주목할 것은 가담자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통상 사기 사건은 소수의 범죄자에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독 보험사기 사건은 가담자가 다수다. 이것은 보험사기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보험사기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이들이 손쉽게 보험사기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첫째, 보험사기가 서류 몇 장으로 쉽게 성립될 수 있고, 둘째 적발이 쉽지 않으며, 셋째 보험사기가 만연해서 “못 받아내면 바보”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넷째 사법부의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실비보험 가입자 수가 3500만명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보험사기에 가담한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또 앞으로 가담하게 될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보험사기도 엄연한 사기범죄행위다. 강력한 처벌로 일벌백계하여 근절시켜야 한다. 지난해 어느 방송사는 ‘못 타먹으면 바보 보험사기공화국’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보험사기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고 보험사기 공화국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사기공화국이 될 것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