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투자가 지난 14일 배포한 원본(오른쪽)과 수정된 리포트.
[뉴스토마토 박기영기자] ‘증권가의 꽃’, ‘선망 받는 직업 1위’로 꼽히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독립성을 위협받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14일 오전 7시43분께 ‘빙그레; 더 안 좋아질 수도 없다’는 제목의 리포트를 배포했다.
리포트에는 올해 상반기 상장 예정인 해태제과가 빙과류 사업 부문을 매각할 경우 빙과 시장 경쟁사업자가 4곳에서 3곳으로 줄어들어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 리포트는 채 몇 시간도 빛을 보지 못했다. 해태제과의 항의로 이미 배포된 리포트를 거둬들여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일 오전 10시46분께 다시 배포된 동일한 제목의 리포트에는 해태제과에 관한 언급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리포트 내용이 수정된 것에 대해 “(빙과사업부문 매각)가능성이 0.00%도 없다”며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는 “해태제과가 기업공개(IPO) 이슈가 있어 예민한 시기에 생각이 짧았다”면서도 자신이 작성한 리포트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4일 ‘크라운제과, 매력적인 가격과 커지는 기대감’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해태제과가 상장으로 빙과사업을 경쟁사에 매각하면 주가에는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리포트에서도 “매각 가능성이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며 새롭게 제기한 시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태제과는 지난 3월24일 한국거래소로부터 유가증권시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상장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눈치 때문에 매도 리포트도 못 쓰는 것은 하루 이틀된 문제가 아니다”고 독립적인 위치에서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리포트는 “일종의 시나리오”라고 설명한다. 애널리스트들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증권가의 꽃’이란 평가를 듣는 이유도 이런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데 전문적 지식과 수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과 소신대로 리포트를 작성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부담이 따르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최근 하나투어에 관련해 부진한 실적을 지적한 증권사는 해당 회사로부터 기업탐방을 금지당했다.
이에 지난 7일 국내 증권사 32곳의 리서치센터장들이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다양한 시각의 리포트가 공표되고, 해당 리포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가능해야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책될 수 있다”고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에는 모 기업 임원이 자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애널리스트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1년 초 1500명 수준이었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5년여 만에 1100여명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증권사들이 상황이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고연봉을 받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을 해고하기 시작한 탓이다.
김선제 성결대 경영학과 교수는 “애널리스트가 독립된 견해를 견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런 행태가 계속되면 증권사 리포트는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기영 기자 parkgiyoung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