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사리는 정책금융, 해외수주 도움 안돼"

각종 지원책 쏟아내는 정부와 돈줄 쥔 정책금융 '엇박자'
국가차원 전폭적 자금지원 나서는 중국 건설사 싹쓸이 우려

입력 : 2016-04-17 오전 11:00:00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정책금융에 대한 건설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해외 수주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돈줄을 쥐고 있는 정책금융의 '몸 사리기'로 중국이나 일본에 프로젝트를 뺏기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책금융의 엇박자 속에 건설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 들어 정부는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란 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산업자원부 주요 인사를 비롯해 양국 간 고위급 인사 교류를 확대하고, 금융기관 및 해외건설 관련 유관기관과 수차례 간담회도 가졌다.
 
또 새로운 해외수주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민관 수주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신시장 개척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책금융의 파이낸싱 지원이 부족해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이어지자 건설업계의 불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세가 장기화되면서 파이낸싱이 수주전 승리의 핵심으로 부상했지만, 과거 투자로 입은 피해만 생각해 정책금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모뉴엘 사태나 SK가 참여한 싱가포르 주롱아로마틱스 프로젝트 등에서 발생한 정책금융의 손실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투자를 꺼리는 것 같다"며 "실질적인 돈줄인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의 몸 사리기로 주요 수주전에서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저가수주를 막기 위한 사업성 심사 강화도 좋지만 중요한 순간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뉴엘은 수출입은행의 '히든챔피언 제도'를 악용해 분식회계와 수출서류 위조 등을 통해 3조원이 넘는 대출사기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출입은행 임직원 수십명이 징계를 받았고, 일부 간부는 실형을 받기까지 했다. 또 '히든챔피언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는 기업도 해마다 줄고 있다.
 
주롱아로마틱스 프로젝트는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16개 금융회사가 싱가포르 석유화학업체인 주롱아로마틱스(JAC)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및 보증으로 15억달러를 제공했지만, 석유화학제품 가격 하락으로 공장이 가동을 중지하면서 정책금융기관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다.
 
반면, 해외수주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일본에서는 정부가 전폭적인 자금지원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이란, 아프리카 등 전략지역에 정부 차원의 차관을 제공하거나 직접투자에 집중해 자국 건설사의 수주로 연결시키고 있다. 중국의 정책금융 규모는 우리나라의 45배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무구조가 악화된 중동국가나 동남아시아 등 신흥 국가에서는 먼저 중국 정부와 건설사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일본은 자국 건설사의 디벨로퍼 역량을 십분 활용해 단순 도급사업 보다는 민관협력방식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차관 제공 등 정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초기 개발 마스터플랜 단계부터 운영까지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사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국가나 건설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 초기 선점 효과가 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주요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제조업 수출과 달리 건설사의 해외수주는 각종 기자재 등이 동반돼 국내 중소기업 수출 증대와도 직결된다"며 "갈수록 수주시장에서 자금조달 비중이 확대되는 만큼 정책금융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해외 수주를 독려하는 정부와 자금지원을 망설이는 정책금융의 엇박자 속에 국내 건설사들이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완공한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 정유공장 전경. 사진/현대엔지니어링.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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