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궁민관·조승희기자] 정유사들의 고공행진이 거침없다. 최근 수년간 국내 중후장대 산업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유가,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유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실적 훈풍을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일반적으로 이들 중후장대 산업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이 공통분모가 많은 데다, 각 산업별로 전후방에 걸쳐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만큼 정유산업의 이 같은 독주는 이례적으로 다가온다.
실례로 지난 몇년간 이어진 저유가 기조는 국내 모든 중후장대 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해운사들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로 물동량 감소와 운임하락의 어려움에 직면했고, 조선소들은 해운사들로부터의 선박 발주량 감소와 해양플랜트 부실의 직격탄을 맞았다. 철강사들은 배에 건조할 물량이 마르면서 시름했고, 여기에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중국발 공급과잉까지 겹치면서 경영난에 허덕였다. 정유업계 역시 2014년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며 같은 흐름을 보였지만, 지난해 극적 반등에 성공한 뒤 2년째 호황을 맞고 있다.
올 1분기
SK이노베이션(096770)과
S-Oil(010950)은 각각 8848억원, 4914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53%, 106%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아직 1분기 실적 발표 전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까지 더하면 이들 정유 4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2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 배경은 '국제유가·정제마진·비정유'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1월 평균 26.9달러까지 떨어졌다가, 2월 29.15달러, 3월 35.5달러로 완만히 상승하며 정유사들에게 재고 이익을 가져다줬다. 지난해 저유가 기조에도 유례없이 높게 이어진 정제마진 역시 정유업계의 호황을 이끌었다.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부족으로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6.6~9.9달러 수준으로 높게 유지됐다. 정제마진이란 정유사가 일정 가격에 들여온 원유를 휘발유나 경유 등 제품으로 만들어 팔 때 발생하는 가격 차이로, 정유사 실적의 중요한 지표다.
탄탄한 정유를 바탕으로 화학·윤활유 등 비정유 사업까지 고르게 수익을 내면서 실적을 견인했다. 정유사업에 편중됐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해 온 점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 4분기 영업이익 중 무려 37%가 윤활유 사업에서 나왔고, 올해 1분기는 에틸렌과 파라자일렌(PX) 등 석유화학과 윤활유 부문 실적이 전체 영업이익의 42.1%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가 됐다. S-Oil도 1분기 석유화학 및 윤활유 사업이 전체 수익의 55.3%를 차지했으며, 윤활유 사업 영업이익률은 39.2%까지 치솟았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2008년 고유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미국과 유럽의 정유사업이 구조조정을 겪으며 많은 정제시설이 폐쇄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됐다"면서 "이후 유가 하락으로 아시아 지역의 석유 수요는 오히려 증가해 상대적으로 다른 중화학공업에 비해 상황이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정유·석유화학 산업과 함께 중후장대 산업에서 업스트림격에 해당하는 철강산업 역시 올해 턴어라운드가 기대된다. 연초 국제유가가 반등세를 보이면서 철광석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난 수년간 이어진 공급과잉 문제 역시 중국 내부에서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수급 조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상승과 맞물려 철강 원자재 가격 역시 근 10년래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또 중국발 공급과잉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며 철강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철강업체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유와 철강 등 업스트림의 호조세가 다운스트림격인 조선까지 이어지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는 국제유가와 철광석 가격 상승을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일종의 '선행지표'로 삼는다"며 "이들 가격의 상승은 배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며, 이 같은 기대감이 가시화되면 곧 발주량 증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조선업체들이 평가하는 국제유가의 적정선은 60~70달러선으로, 유가가 좀 더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버티기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보다 더 다운스트림인 해운업계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물동량이 급락한 가운데 운임 역시 극단적으로 낮아진 상황"이라며 "최근 국제유가의 반등이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연결되기 전까지 해운업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금은 생존이 최선"이라는 말에서 해운업계가 처한 절망감이 다가온다.
남궁민관·조승희 기자 kunggi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