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춤하던 한류가 최근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로 새 장을 열고 있다. 신한류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는 '태후'의 누적 조회수(화제지수)가 4월 현재 100억뷰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태후’ 한 편의 드라마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가 3조원이 넘는다는 둥의 황홀한 얘기가 들린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이 손오공의 요술 방망이처럼 취급되고 있다.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확실히 깨닫고 있다.
한류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배용준과 최지우를 내세운 윤석호 피디의 ‘겨울연가’가 일본 대륙을 강타했다. 일본에서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한 ‘겨울연가’ 덕에 한국은 밀려드는 일본 관광객들로 쾌재를 불렀다. 영화의 촬영지인 가평의 남이섬은 일약 관광명소로 떠올랐고 가회동 일대가 일본인 아줌마 부대들로 넘쳐났다. 이에 따라 2000년대 한국영화의 일본 수출이 잠시 호황을 맞은 바 있다.
중국에서는 1998년 그룹 HOT의 음반이 돌풍을 일으키며 클론, 안재욱 등의 가수가 합세해 본격적인 한류의 물꼬를 텄다. 가요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도 한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랑이 뭐길래’는 약 1억명의 중국인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별은 내가슴에’ 등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홍콩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미 섬씽’ 등의 한국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한류란 용어는 중국 언론이 한국의 유행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보편화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은 일본 문화시장 개방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수준 높은 일본문화가 들어오면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종속된다는 개방 반대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일본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개방에 벌벌 떤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수입된 일본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일본의 문화는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다. 영화계의 경우 스크린쿼터제 폐지에 이어 일본영화시장 개방은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한국영화가 훌쩍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영화를 부러워했다. 문화의 역전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한류가 시작된 것이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의 원동력을 문화산업에서 찾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판권 수출이 활발하고 드라마 속 등장 상품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며 "콘텐츠 산업은 소비재 수출 등 여타 산업의 수출을 견인하는 창조경제형 신성장산업"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류를 이끄는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의 고급 인재들이 속속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시장으로 흡수되는 한류 인력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영화와 방송계의 주요 인력들이 중국으로 다 모여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경우 허진호, 곽재용, 박영훈 등 중견 감독을 포함해 지난 수년 간 여러 영화를 흥행시킨 안동규 대표, 영화촬영감독협회장을 지낸 변희성 등 많은 인력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드라마의 경우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피디, ‘나는 가수다’ 김영희 피디도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름이 좀 알려진 스텝들을 중국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류 인력 흡수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산업시장 장악도 매머드급이다. 2014년 화처미디어는 국내 3대 영화배급사인 NEW의 지분을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다. NEW는 신한류의 주역 ‘태후’의 제작사이다. 주나 인터내셔널은 드라마 ‘주몽’의 제작사였던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했고, 화이브라더스는 방송제작사 삼화미디어에 228억원을 투자하였다. ‘넛잡’을 제작한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제작사 레드로버도 지난해 쑤닝 유니버설에 경영권을 넘겼다. ‘차이나 머니’가 한국시장을 완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콘텐츠 강국의 기치를 내건 중국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유능한 감독과 프로듀서를 영입하고 동시에 한국의 제작사를 통째로 인수하거나 공동의 지분을 갖고 제작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문화산업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고 밝힌 만큼 한류 인력의 중국 유출에 대한 대책도 시급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한국 문화산업의 해외진출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한류 현상에서 경험했듯이 중국의 한류바람도 3~5년 이내 끝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한국은 중국에 기술과 노하우만 빼앗긴 후 토사구팽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국의 유능한 문화창조 인력들이 중국의 자본에 완전히 흡수되어 한국의 문화산업 자체가 존폐위기의 기로에 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섣불리 들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문화산업 시장의 파이를 키워 유능한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하고, 둘째는 중국자본의 한국시장 장악에 대한 제재를 포함한 법률적 대응도 동시에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기에 한국 정부와 업계는 대응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김진해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국가미래연구원
중국 광둥, 쓰촨, 푸젠, 저장, 윈난 등 5개 성의 5개 TV방송국 PD와 촬영기사, 리포터 등이 지난달 15일 ‘태양의 후예’ 촬영지인 강원 정선군 삼탄아트마인에서 '한류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