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언론을 상대로 쇼를 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사과해야 한다.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인게 아니라 옥시가 죽인 거라고 한명 한명 만나 사과하는게 먼저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터져 나온 피해자 가족의 절규다.
옥시가 2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5년만이다. 이날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대표는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 손상 피해를 입으신 피해자와 그 가족 분들께 가슴 깊이 사과드린다"며 "옥시는 자사 제품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점, 또 신속히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뒤늦게 사과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보상안을 마련하느라 늦어지게 됐다”는 다소 궁색한 변명을 이어갔다.
실제 이날 사과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5년만이며, 문제의 제품(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출시한 지 15년 만이다. 불매운동 확산 등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되자 한국법인 대표가 뒤늦게 직접 나선 것이다.
사프달 대표는 피해가족들을 언급하며 '포괄적 보상방안'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그는 "우선 1등급과 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 분들 가운데 저희 제품을 사용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보상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억원의 인도적 기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보상금'이 아닌 '인도적 기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협의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떠안지는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는 7월까지 독립적인 전문가 기구를 구성해 보상 방식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기구의 독립성이 얼마나 담보될 지, 어떤 인물들로 전문가 집단을 구성할 지 등 구체적 방안은 전혀 내놓지 못했다.
향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과 회사 내부적으로도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 피해자 산정 범위 등 구체적인 보상 방안 등도 언급되지 않았다.
결국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피해가족들의 원성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된 지 5분여만에 피해자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거센 항의를 하며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피해가족들은 "사과는 이미 늦었다"고 소리쳤다.
한 피해 가족은 "사과 기자회견이라면서 일정은 언론을 상대로만 공개했지, 우리에겐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기자회견이 사과인가, 사과할 대상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최승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연대 대표는 사프달 대표의 기자회견이 종료된 직후 같은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눈물의 호소를 이어갔다.
최 대표는 "옥시의 면피용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5년간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 온 피해자들의 한 맺힌 눈물을 외면하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내놓는 기자간담회 형식의 옥시 사과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 인륜적인 행태를 계속하는 옥시는 대한민국에서 자진 철수하고 폐업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아기를 잘 키워보려고 매일 가습기에다 저들이 판 살균제를 넣었고 우리 아기를 내 손으로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인것"이라며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옥시 아타 울라시드 샤프달 현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5년 만에 첫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