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곡성', 나홍진 감독이 던진 '지옥 같은 숙제'

입력 : 2016-05-10 오후 6:13:19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哭聲)을 보고 나면 장면을 하나하나씩 해체해가며 그 장면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심지어 시사회 이후 진행됐던 곽도원과 천우희의 인터뷰 현장에서도 취재진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을 정도다. 나홍진 감독이 던져놓은 숙제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영화가 있는 데 반해 '곡성'은 여러 번 보더라도 영화에 담긴 의미 모두를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만큼 '곡성'은 어려운 숙제다. '나홍진 감독도 모르고 만들었을 것이다', '나 감독이 영화를 보고 헤매는 관객을 보며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등의 각종 푸념을 낳게 하는 '곡성'은 개봉 전부터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예고하고 있다.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 감독은 전라남도 소재의 마을이자 "소리 내어 울다"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의 이 영화를 지옥으로 묘사했다. 어느 날 갑자기 번지는 전염병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 사건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은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저 곳에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가슴에는 먹먹함이 맴돈다. "만약 내가 종구(곽도원 분)라면"이라는 상상은 아찔하고도 끔찍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지옥으로 묘사하면서 거의 모든 장면에 상징을 담았다. 156분 동안 이어지는 상징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면서 영화의 의도와 메시지를 풀어내려 하지만 워낙 설명이 불친절한 탓에 계속 난관에 부딪힌다. "이건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돈다. '지옥 같은 숙제'라 함은 그 이유다.

 

재밌는 점은 이토록 어려운 이 숙제를 꼭 풀고 싶은 욕구가 든다는 것이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강약을 고루 분배한 구성, 롱샷과 클로즈업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연출에 단 한 장면 타협 없이 연기한 배우들까지 가세하면서 '곡성'은 아주 어렵지만 재미난 숙제가 됐다.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 감독이 "코미디 영화로 만들었다"는 초·중반부에는 긴장감과 유머러스함이 매우 세밀하게 배치됐다. 긴장감이 드는 찰나에 웃음이 나고, 웃자마자 덜컥 놀란다. 관객의 심장을 시종일관 쥐락펴락한다. 종구를 중심으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중·후반부부터는 극도의 긴장감을 연달아 퍼붓는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진이 빠져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관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감독은 세밀한 스토리를 감각적인 연출로 풀어낸다. 인물의 감정에 깊이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 롱샷으로 인물과 관객 사이에 거리감을 준다. 몰입이 깊어지려는 순간 나타나는 풀샷 때문에 영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실제 촬영지였던 곡성의 풍광을 시퀀스가 넘어가는 시점에 틈틈이 집어넣는 방식도 신선하다. 아주 잠깐이지만 몇몇 장면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배우들의 연기는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훌륭하다. 곽도원을 비롯해 천우희, 황정민, 쿠니무라 준, 김환희 등 주요배역은 물론 최귀화, 전배수, 장소연, 허진, 김기천, 손강국, 정미남, 길창규 등 분량과 비중을 막론하고 하나 같이 처절한 연기를 펼친다. 배우들의 연기만 봐도 나 감독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지난 3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의 영상과 9일 있었던 VIP 시사회에서의 영상은 아주 작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VIP 시사회에서는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의 컷들이 몇 장면 사라졌는데, 그것만으로도 처음 봤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곡성'은 그만큼 기묘한 영화다. 약 4년 동안 이 영화에 목을 매온 나 감독은 개봉을 하루 앞두고까지 완성품을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서사 전개에 대한 설명이 워낙 불친절한 탓에 혹자는 '곡성'을 보고 나면 단지 그럴싸한 상징만 나열해놓은 것이 아닐까 의심할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영화의 줄기들이 개연성 있게 모두 연결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 감독의 재능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워낙 무서운 작품이다. 임산부나 심신 미약자라면 영화를 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나홍진 감독이 던진 지옥의 늪에 빠져보길 권한다. 그래도 두 번 보면 좀 덜 무섭다. 개봉은 11일이다.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플러스(+) 별점 포인트

 

단 한 컷도 버릴 게 없는 156: ★★★★★

곽도원과 김환희의 처절함, 짧지만 강했던 황정민, 천우희였기에 가능했던 폭발력, 그리고 쿠니무라 준 : ★★★★★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죽을 듯이 연기한 길창규, 정미남의 헌신 : ★★★★

그 외 모든 출연배우들 : ★★★

관객이 마치 신이 된 것 마냥 느끼게 하는 롱샷과 인물의 속까지 파고드는 클로즈업의 안정된 분배 : ★★★

세계가 놀랄 만한 굿판 시퀀스 : ★★★

의외로 상당히 웃기는 초·중반부 : ★★★

▲ 더럽게 무서운 검은 개 : ★★

수만 분의 1에 성공한 전배수 : ★★

곡성의 아름다운 풍광 : ★★

 

마이너스(-) 별점 포인트

 

너무 불친절한 설명 :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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