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함께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이들이 있다. ‘정치평론가’다. 그러나 정치평론가가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는 간단치 않다. 데이터를 가지고 정치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를 문학이나 영화처럼 평론한다는 것인데 과학인 정치를 어찌 감성으로 평론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정치평론가들이 종편에 나와 정치를 가십거리로 만들고 온갖 사회현상을 어수선하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 정치를 망치는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편의 정치 방송은 공론장이라기 보다 정치평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는 동네 복덕방과 흡사하다. 일부 평론가들은 A의원이 창당을 하는데 잘 될 것이라 점치고, 다른 평론가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핏대를 세운다. 심지어 O·X로 한국 정치를 전망하는 웃지 못할 코너까지 등장한다. 한 사회자가 “여권발 정계개편 가능성 있는가?”라고 물으면 패널로 등장한 정치 평론가들은 각각 O·X 피켓을 들어 가능성을 점친다. 한국이 아무리 객관식의 나라라지만 정치마저 O·X로 정답을 구한다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게다가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여지없이 추켜세우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토크를 이 방송 저 방송에서 하루 종일 해대는 한국의 정치 평론가들은 앵무새와 다름없다. 이들은 조선을 패망케 한 유생들의 탁상공론이나 노론·소론의 당파 싸움마저 연상시킨다.
이웃 일본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양상들이 펼쳐진다. 일본의 정치평론가들은 정치부 기자나 정치학자들이 주를 이룬다. 경제학자 다카하시 요이치는 2012년 미국 대선에서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세이버메트릭스' 방법을 응용해 워싱턴DC를 비롯한 51개 주의 승패를 적중시키는 신기록을 세웠지만 일본에는 이런 인물이 없다고 한탄한다. 일본의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정치 관계자에게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반경 1미터 취재 범위 안에서 육감으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며, 특정의 정치인을 부추겨 세우거나 깎아내리는 '포지션 토크'가 많다고 비난한다. 어쩌면 한·일 양국의 모습이 이리도 판박이인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프랑스에는 정치평론가라 불리는 직업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언론에 나와 정치를 얘기하는 사람은 저널리스트, 정치해설자, 정치분석가이다. 정치분석은 주로 폴리톨로그(politologues. 정치학자들)가 한다. 이들은 프랑스 정치를 얘기할 때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함께 데이터를 가지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초해 정치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지, 육감이나 “내가 엘리제궁에 있을 때 이랬다, 저랬다”는 '뒷담화'로 방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처럼 정치 방송이 온종일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구상·발표하거나 선거가 있을 때는 빈번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1회, 혹은 일주일에 몇 차례로 미디어 커버리지 규정을 엄격히 지킨다.
프랑스 방송에서 정치를 다루는 또 하나의 군단은 크로니꿰르(Chroniqueurs. 시평담당자)다. 이들은 TV나 라디오에 나와 정치를 기괴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풍자해 꼬집고 코믹하게 질타한다. 민영방송 <꺄날 플뤼스>(Canal+)의 ‘그랑주르날'(Grand Journal)에는 유명 크로니꿰르들이 나와 인형극과 함께 정치의 잘못된 점을 풍자하고 희화함으로써 프랑스 정치권을 긴장시키지만 시청자들을 통쾌하게 해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치를 육감으로 코멘트하는 정치 평론을 자제하고 경험적 자료에 근거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는 액션이다. 이러한 정치를 가십거리로 삼아 일거수일투족 왈가왈부 한다면 한국 정치는 방향을 잃어버릴 게 분명하다. 물론 정치를 희화화하고 질타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정치학자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들고 나와 정치를 분석하는 것과 시평 담당자들이 정치를 희화화하는 구분은 있어야 한다. 한국에 정치학이 도입된지 어언 반 세기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정치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가 됐다. 올바른 정치문화 발전을 위해 종편의 정치 프로그램이 과연 이대로 좋은지 심각히 고뇌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는 한 번 굳어지면 고치기 어려운 법이다. 더 늦기 전에 조정해서 멋진 정치문화를 물려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