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들리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

모난돌 / 시선

입력 : 2016-05-26 오전 9:21:30
“왜냐하면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Because it’s 2015).” 작년 11월 4일(현지시간) 캐나다 신임 총리 쥐스탱 트뤼도는 새 내각 공식 출범 기자회견에서 “내각 구성에서 남녀 비율을 중요하게 고려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트뤼도는 캐나다 사상 최초로 내각을 남녀 15명씩 동수로 구성했다. 
 
트뤼도가 말한 2015년은 단지 예수가 죽은 지 2015년이 흘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캐나다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캐나다의 2015년은 여성이 정치의 주체로 인정받은 지 97년이 흘렀다는 의미다. 그만큼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기자의 질문에 트뤼도가 대답하며 웃음을 보인 이유는 97년이라는 시간을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양성평등 지수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를 보면 한국은 성 평등 지수가 0.651(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15위를 차지했다. WEF는 2006년부터 매년 ‘경제 활동 참여’, ‘교육적 성취’, ‘건강’, ‘정치 영향력’ 등 4개 분야로 나눠 남성 대비 여성 평등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분야별로 한국은 각각 125위, 102위, 79위, 10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항목을 따져보면, ‘경제 활동 참여’ 부문에서는 0.557로 125위였다. 전문직 및 기술직 종사자 여성 비율은 86위로 높았지만 남녀 임금 차이는 116위에 머물렀다. ‘정치 영향력’은 0.107로 101위를 기록했다. 의회의 여성 비율은 94위였고 여성 장관 비율은 130위였다.
 
순위를 살펴보면 북유럽 국가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아이슬란드가 1위에 올랐고 노르웨이와 핀란드 그리고 스웨덴이 그 뒤를 따랐다. 미국은 28위였고 캐나다는 2단계 낮은 30위에 올랐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필리핀이 7위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르완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나라보다도 남녀 차별이 심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조사의 신빙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WEF는 국가 간 문화 차이를 배제하고 항목별로 절대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남성 대비 상대적인 여성의 수준을 비교했다. 절대치를 놓고 볼 때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더라도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이 심하다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 항목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살펴보면 보고서가 내놓은 결과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WEF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 사진/바람아시아
 
여성을 짓누르고 있는 견고한 유리천장
지난 3월 8일 제108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는 각 나라별 ?고등고육 격차 ?경제활동 참여 비율 ?임금 격차 등 10개 항목을 비교 분석해 ‘유리천장 지수’를 산출했다. 한국은 OECD 평균 점수(56점)보다도 낮은 25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하여 ‘일하는 여성에게 가장 나쁜 나라’로 선정됐다. 100점이 만점이며 점수가 높을수록 남녀가 직장 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활동 참여 비율이 21.6% 적었다. 남녀 임금 격차는 36.7%로 30%대 격차는 조사 대상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전체 중 여성 고위직 비율과 사내 이사진 내 여성 비율도 각각 11%와 2.1%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WEF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북유럽 국가가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이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여러 면에서 뒤쳐져 있다. 유리천장은 직장 내 진급 시 성별과 출신 인종에 따른 차별을 뜻한다. 직장 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더라도 여성 혹은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유리천장은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지수. 사진/바람아시아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사라지는 여성
유리천장 지수를 보면 한국에서는 투명한 유리를 넘어 단단한 콘크리트 천장이 여성들의 머리 위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지표로 추상화된 유리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리가 콘크리트만큼이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사혁신처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말 기준 여성 공무원이 비율은 49%에 달한다. 국가공무원 63만 400명 중 절반에 달하는 31만 860명이 여성이다. 가시적으로는 공무원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된 것처럼 보인다. 
 
고위 공무원에서 여성의 비율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해를 기준으로 4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1~3급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4.5%로 수치가 더 떨어진다. 공공기관은 2014년부터 여성 관리자 임용목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위직 여성 공무원의 비율은 낮다.
 
31만 명의 여성 공무원 중 25만 명이 공립학교 교사라는 점도 공무원 사회에서 실질적인 양성평등이 구현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2015년 여성 교장?교감 비율은 각각 24.8%와 43.7%로 전체에서 34.2%를 차지한다. 전체 공교육 교사 중 여성의 비율은 68.7%이다. 여성의 수가 많은 공립학교 속에서도 여전히 유리천장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애로 작용한다.
 
제도적으로나마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놓은 공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반 기업의 유리천장은 더욱 심각하다. 2015년 10~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내 상장기업 1745개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 관리자?임원 비율을 조사했다. 설문에 응답한 1228곳의 항목별 평균을 분석한 결과 전체 관리자 중 여성의 비율은 평균 7.1%로 나타났다. 여성 임원의 비율은 평균 1.9%로 더 낮게 나왔다. 
 
기업 관련 정보 제공 업체 CEO스코어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5년 6월말 기준으로 500대 기업 가운데 반기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348개 기업의 68%는 여성 임원이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 238개 회사의 임원진은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돼 있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과소 대표성 문제와 여성할당제
우리나라는 1948년 7월 7일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서구에서 부단한 투쟁을 거쳐 성취한 여성의 참정권이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의 도입과 함께 자연스레 정착된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유교적 사회 분위기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실질적인 여성의 정치적 참여는 지지부진했다.
 
지난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여성의 실질적 정치 참여가 아직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성은 51명이 당선돼 전체 당선자의 17%에 불과했다. 당선자 가운데 25명은 비례대표에서 당선됐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만들 때 홀수 순번에 여성을 배정해야 한다. 비례 대표 여성 당선인을 제외하고 지역구 당선 여성 의원은 26명으로 전체(253명) 가운데 10.2%를 차지했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과소 대표성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의회 진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2000년 정당법 개정을 통해 국회 및 광역의회 비례대표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되었다. 이후 여성 할당 비율을 늘리고 여성 후보가 후순위로 밀리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졌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47조에 따르면 정당은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비례대표의 50%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되 후보자명부 순위의 매 홀수마다 여성을 배치해야 한다.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지역구 공천은 각각 전국 지역구 수의 30%이상을 여성에게 할 것을 명시했지만 권고사항에 그쳐 강제력은 없다.  
 
여성할당제의 성과는 확연했다. 2000년 여성할당제를 제도화한 후 여성의 의회 진출이 이전과 비교하여 증가했다. 15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299명 중 9명(지역구 2명, 비례대표 7명)으로 전체 중 3%를 차지했지만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이후인 16대 총선에서 여성은 273명 가운데 16명(지역구 5명, 비례대표 11명)이 당선되었다. 
 
이후 여성 당선인은 계속 증가했다. 17대 국회는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여성 의원 비율을 기록했다. 17대 총선에서 299명 가운데 13%인 39명(지역구 10명, 비례대표 29명), 18대 총선에서 13.7%인 41명(지역구 14명, 비례대표 27명)이 국회로 진출했다. 국회 정원이 1명 늘어 300명이 된 19대 총선에서는 15.7%인 47명(지역구 19명, 비례대표 28명)이 당선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5년 지역구 여성할당제 30% 의무화 연구보고서 발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여성할당제
제도적인 노력으로 인해 여성의 의회 진출이 과거와 비교하여 원활해졌지만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최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도 여성 당선인은 전체의 20%에도 못 미쳤다. 여성의 과소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할당제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성정책연구원 김원홍 연구위원은 <지역구 여성할당제 30% 의무화> 보고서를 통해 여성할당제에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 국회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는 단순의무화로 강제 이행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위반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구 여성 할당제 역시 “전국지역구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만 되어 있을 뿐 의무사항이 아니다. 권고조항으로만 머물러 있는 여성할당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한다.
 
여성할당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총선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위반할 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도입되어야 한다. 지역구 여성할당제도 노력사항으로 둘 것이 아니라 강제력을 가진 제도로 개정해야 한다. 현행 여성할당제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여성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는 제한된 수준에만 머무를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5년 지역구 여성할당제 30% 의무화 연구보고서 발췌
 
프랑스의 남녀동수법
내각의 구성을 남녀 각각 절반씩 구성한 것은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2년 당시 프랑스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의 첫 내각 구성을 남녀 동수로 구성했다. 장관 34명을 남녀 17명씩 맡아 내각 내 완전한 성평등을 실현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처음 내각을 구성할 때 장관 15명 중 7명을 여성으로 채웠지만 여성 장관이 50%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결정은 2000년에 공포된 남녀동수법(파리테 법, parite law)과 맥을 나란히 한다. 프랑스는 2000년 6월 6일 의원선거와 선출직에 남녀가 평등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남녀동수법을 통과시켰다. 남녀 동등한 수로 의회를 구성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된 이 법은 수년간의 논쟁 끝에 헌법 개정을 거쳐 발효되었다. 남녀동수법의 특징은 남녀 각각 절반씩 공천하는 동수할당제이다. 한국의 여성할당제와 달리 강제이행의무 조항이 있는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유럽 중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놓고 볼 때 가장 후진적인 국가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일찍이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천명되었지만 여성은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들의 부단한 투쟁 끝에 1944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받았다. 비교적 늦게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프랑스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남녀동수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전향적이라 할만하다. 법적 장치를 통해 인구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의 의회 내 대표성을 확립시켰다.
 
아프리카 성평등 국가 르완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평등 지수’에서 6위를 차지한 르완다는 헌법 제정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2003년에 제정된 헌법은 국회의원과 장관 및 각 부처 공무원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르완다는 하원의원 80명 가운데 64%인 51명이 여성이다. 장관과 차관도 10명 중 3명이 여성이며 사법부도 구성원 10명 중 4명이 여성이다. 한 때 부족 간 벌어졌던 무차별 학살 속에서 여성의 인권이 무참히 유린되었던 나라가 이제는 유럽 선진국 못지않은 성평등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강제력 있는 법적 장치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초사회로 진입한 한국
2016년 3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 상 대한민국 인구 약 5천 1백만 명 중 남녀는 각각 2천 570만 명(남성 25,775,322명, 여성 25,794,214명)으로 비율이 1:1이다. 작년 6월 한국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작성한 1960년대 후반 이래 처음으로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게 나타났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지만 이제는 여초 사회로 진입했다.
 
인구 절반이 여성인 상황에서 이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채 20%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데 있어 장애로 작용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부터 변해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입법자가 국회에 많아져야 그들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할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나라 절반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의 과소 대표성 문제를 해결할 제도적인 개선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프랑스와 르완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성할당제를 전향적으로 개정하여 강제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강제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남녀할당제는 개선 과정을 거치면서도 남녀동수제를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해 프랑스에서는 남녀동수제가 통과되었다. 프랑스 국민은 인권 의식이 높고 민주주의가 발달되어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나긴 투쟁기를 거쳐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민주국가 성립과 함께 제도적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보장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결단만 있으면 된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2016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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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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