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1월21일 개정도서정가제(이하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약 1년 반이 지났다. 타당성 재검토를 하기로 한 시점인 3년의 절반이 지난 셈이다.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도서의 할인율이 정가 대비 최대 15%(직접할인 10%·간접할인 5%)로 묶이면서 출판시장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무제한 할인이 사라지자 시장 규모가 줄었다. 소비자를 되돌리기 위해 카드할인이나 경품 같은 변칙적인 마케팅도 생겨났다. 그 사이 싼 값으로 무장한 중고서점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도서정가제를 통해 시장의 구조 재편이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제 위치를 완전히 찾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2만1865원. 통계청이 공개한 올 1분기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다. 통계가 제공된 2003년 이후 1분기 역대 최저치다. 책 소비가 줄어든 것에 대해 소비자들은 "도서정가제 탓에 책값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일부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고 말한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출판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개정도서정가제가 시행 1년반을 맞았다. 출판시장 유통질서 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공급률 정상화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사진/뉴시스
출판시장 지각변동…중소형 출판사 '숨통'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출판시장은 확실히 쪼그라들었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출판사 10곳 중 6곳에서 매출 감소세가 나타났다. 영업적자를 본 곳도 10곳 중 2곳에 달했다. 단행본 출판사는 더 큰 타격을 입었다. 73개 주요 출판사의 매출이 1.3%, 영업이익이 0.4% 줄어들 때 21개 단행본 출판사의 매출은 14.9%, 영업이익은 3.3% 감소했다. 실적을 공개하는 대규모 단행본 출판사의 경우 매출액 중 구간판매 비중이 높은데 할인이 중단되면서 판매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스테디셀러 판매 비중이 높은 중대형 출판사는 모두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형 출판사들은 오히려 상황이 개선됐다고 말한다. 할인 때문에 책을 사던 소비자가 줄어 전체 시장 규모는 작아졌지만 꾸준히 책을 읽는 '진짜 독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할인판매와 물량공세로 시장을 장악하던 메이저 출판사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그동안 묻혀있던 중소형 출판사가 빛을 보게 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A출판사 대표는 "도서정가제는 출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며 "적당히 만들어 마케팅으로 움직이던 책이 많이 줄었다. 시장은 줄었지만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최대 수혜자는 '대형서점'
그러나 도서정가제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다. 지난해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영풍문고 등 7대 대형서점의 매출은 전년대비 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40%나 늘었다. 책을 공급받는 가격(공급률)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할인이 10%로 묶이며 판매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출판계에서는 통상 65%를 최소 적정 공급률로 보고 있다. 하지만 출판유통진흥원이 공개한 '출판유통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거래한 출판사 247곳 중 3분의2에 육박하는 159곳의 공급률이 65%를 밑돌았다. 할인판매 시절 책정한 낮은 공급률이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곳이 많은 것이다.
올 들어서는 교보문고와 예스24 등을 중심으로 공급률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유의미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스24는 지난 2월 출판인회의에서 공급률 상향을 요청한 이후 출판사와 개별적으로 공급률을 조정하고 있지만 영업상의 이유로 구체적인 현황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장은 "대형 서점은 신생출판사에 대해 여전히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신생출판사가 도매상을 통하도록 하는 변칙적 방법을 쓰며 공급률 논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도매상을 통할 경우 공급률은 더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도서정가제'는 의견 엇갈려
할인을 전면 금지하는 '완전도서정가제'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가 6대4 정도로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15% 할인을 포함한 모든 변칙적인 할인을 금지해야 시장 거품이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암묵적으로 허용된 카드사 제휴할인이나 경품, 쿠폰 같은 변칙할인이 공정한 경쟁을 막고 거품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도서정가제의 혜택이 오프라인 서점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도 온라인서점이 일률적으로 적용한 15% 할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급증한 중고서점 역시 변칙할인을 하고 있는 곳이라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반대쪽에서는 완전도서정가제 하에서는 출판시장이 더 작아질 수 있다며 최소한 현상유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출판사 대표는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소비자 반발이 크게 우려된다"며 "출판사로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올 하반기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위탁해 '개정도서정가제 영향평가 및 향후방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구결과 및 출판업계의 의견을 검토해 도서정가제의 개선점 및 보완점을 모색할 계획이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