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25%로 0.25%포인트 깜짝 인하한 배경에는 우선 국내 경제 상황을 꼽을 수 있다.
국내 경제에 대한 한은의 진단을 보면 수출이 감소세를 지속하고 소비 등 내수의 개선 움직임이 약화된 가운데 경제주체들의 심리도 부진하다. 고용 부문도 고용률과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나 취업자수 증가세는 둔화됐다.
이러한 경기 부진에 대한 인식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국내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나 대내외 경제여건 등에 비춰 4월에 전망한 성장경로의 하방위험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언급한 4월 전망은 한은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기존 3.0%에서 2.8%로 하향조정한 내용을 담은 수정 경제전망이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대비 0.5% 성장하는데 그치고 경기 하강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 카드로 2% 후반대 성장률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두 번째는 전날 발표된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관련 후폭풍 때문이다. 지난 8일 정부는 최근 뜨거운 감자인 기업 구조조정 관련 추진계획과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보면 조선 3사는 자구 계획으로 오는 2018년까지 고용 규모를 30%, 설비 규모를 20% 각각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속도를 내면 대량실업 사태 등 경제에 타격을 주는 후폭풍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 구조조정 본격화로 대량실업 사태 등이 벌어질 경우 소비와 투자 위축은 더욱 심각해지고 이는 추가적인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한은이 1년 만에 '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만든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추가 인하함으로써 앞으로의 경기 하강에 대비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주열 총재는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실물경제와 경제주체의 심리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선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대외 요인 때문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4~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개최와 23일로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 등 글로벌 경제 이벤트를 앞두고 한은이 신중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판단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은이 통화정책에 변화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된 충격적인 고용 지표 결과로 미국의 6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9월로 옮겨가면서 국내에서는 지금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시각이 조심스레 나왔다. 지난달 새로 부임한 신임 금통위원 4명의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성향도 같은 시각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이 벌어준 시간에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여력을 자연스럽게 가지면서 선제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판단은 이 총재의 답변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를 언제 생각했는냐'는 질문에 대해 "지난 주말"이라고 답했다. 지난 주말은 미국의 비농업부문 신규 일자리 수가 발표된 날이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1년 만에 단행된 기준금리 인하에 정부를 비롯한 경제·금융계 안팎의 반응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리 인하가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가뜩이나 급증한 122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다.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세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한은의 선제적인 금리인하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이란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서도 "가계부채 확대 가능성 등은 다른 미시적인 경제수단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하반기에는 비은행권 가계대출 관리가 강화되면서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를 내린 만큼 가계부채에 더 유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