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미국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6년여 만에 중동의 두바이유보다 높아지면서 국내 정유사에 미칠 영향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미국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원가경쟁력 하락과 가동률 감소로 국내 정유사에 긍정적이라는 시각과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으로 갈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제설비의 6월까지 평균 가동률은 89.7% 수준으로, 지난해 동기(93.6%) 대비 다소 낮아졌다. 유가하락에 따른 미국의 석유 생산량 감소로 WTI 가격이 높아지며 정유사들의 원가경쟁력이 낮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대표적 독립 정유사인 발레로에너지는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44.6% 감소한 8억30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이충재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유설비 가동률 하락은 정유설비 폐쇄와 비슷한 효과가 있어 향후 정제마진이 개선될 수 있다"며 "한국 정유사의 영업환경이 북미 정유사보다 좋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정제설비를 보유한 미국이 가동률을 낮추면 석유제품 수출 감소로 이어져 글로벌 공급과잉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한 정유사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의 수출 시장은 미국보다는 싱가포르 등 아시아 비중이 크기 때문에 미국 가동률 변화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도 "미국 정제시설 가동률이 감소한 것을 만성적 현상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면서 "미국 석유제품 수출 시장과 한국 시장이 겹치는 부분이 크지 않고, 오히려 수년 내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전략화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을 가늠할 수 있는 싱가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1월 평균 배럴당 9.9달러를 기록했다. 사진/AP·뉴시스
미국은 지난 1974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원유 수출을 금지해왔다. 미국 내 원유 재고가 늘어나면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WTI는 두바이유, 브렌트유보다 줄곧 약세였다. 특히 2012년 평균 WTI는 94.2달러로 당시 브렌트유(111.7달러)보다 17.5달러 낮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미국의 석유 수출 자율화 조치와 석유 생산량 감소로 2016년 들어 상황이 뒤바꼈다. WTI의 올해 평균 가격은 배럴당 38.1달러로 두바이유(35.3달러) 가격을 제쳤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석유 생산량 감소세가 201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2분기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이 전분기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낮아지면서 수익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지난 1분기 평균 30달러에서 이번달 46달러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재고평가이익이 기대된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은 유가 1달러 상승시 재고평가이익이 350억원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