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김광연기자]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스포츠개발원은 오는 8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분주하다. 금메달 유력 종목의 선수단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궁, 사격, 체조, 유도, 레슬링, 태권도, 펜싱, 하키, 배드민턴, 탁구, 복싱이 11개의 지원 종목이다. 연구원들은 뇌파치료와 위성항법장치(GPS) 같은 현대과학의 산물을 이용해 선수단의 메달 획득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지금은 올림픽에 집중하고 있지만 스포츠개발원이 엘리트 체육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 대한체육회 훈련원 산하에서 탄생한 이후 처음에는 '한국체육과학연구원'으로 불렸으나 1989년 독립하면서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까지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2014년 2월에는 현재와 같이 이름을 바꿨고 올해 36주년을 맞이했다. 한국 스포츠계의 '싱크탱크'라는 별명답게 40여 명의 연구진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위촉 연구원까지 총 180명 정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댈 때도 있다.
이러한 전문가 집단을 이끄는 '수장'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큼지막한 책상이 눈에 띈다. 요즘 인기인, 소위 '서서 일하는 책상'이다. 이 책상의 주인이 바로 스포츠개발원을 이끄는 수장인 박영옥(59) 원장이다. 앉지 않고 서서 일한다고 하니 왠지 '스포츠계 종사자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박 원장은 실제 스포츠도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평소에는 개발원 와서 배운 스피드 스케이팅을 자주 하고요. 수영도 좋아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주로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셈이죠. 스피드 스케이팅은 4km 정도 돌면 기분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집니다. 한 10년은 한 것 같네요."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장. 사진/스포츠개발원 제공
박영옥 원장은 국내 최초의 여성 원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스포츠계가 남성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박 원장은 지난해 3월5일 제12대 원장으로 취임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사실 사회학을 전공했어요. 여성이라는 것을 떠나 체육 전공 자체도 아닌 셈이죠. 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에서 정책 연구하는 일을 하다가 이곳에 왔습니다. 그간 20년 넘게 이쪽 일을 해오면서 지켜본 결과 남성적인 문화가 아직도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철저히 능력을 중심에 두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 어울립니다."
박 원장을 오랜 기간 지켜본 이들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업무 능력이 뛰어나며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박영옥 원장은 1996년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스포츠산업진흥정책과 남북체육 교류 등 굵직굵직한 업무를 맡아왔다. 원장 직전에는 스포츠산업실장으로 일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내부 승진한 경우다.
특히 박 원장은 실무진을 이끌 때 매번 부서 내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 직원들이 편안하게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해야 구성원들이 능력 발휘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인지 박영옥 원장 주변엔 친목이 아닌 '진짜 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코엑스에서 '2015 제2차 스포츠산업 컨퍼런스'가 열렸을 때도 박영옥 원장의 기조 발표 이후 주변엔 많은 관계자가 모여 함께 대화했다. 당시 박 원장은 '한국 스포츠기업 해외진출 동향과 미래전망'이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국내 스포츠 시설사업과 서비스업이 내수 중심이라고 진단한 후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진 않지만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표현했다.
"현재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 국내 기업에 잠긴 돈이 많은데 막상 투자는 할 투자처가 없다는 겁니다. 국내 각종 사업은 포화시장이 많은데 스포츠산업은 아직도 개발됐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잠재력이 있어요. 예전엔 사람들이 운동을 동네 운동장에서 하거나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을 내고 클럽이나 센터에 가서 합니다. 스포츠라는 게 뭔가 움직이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런 시장을 어떻게 포섭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단 겁니다."
국내 스포츠산업의 성장을 위한 박 원장의 구상은 국내 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박 원장은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 기업이 비슷한 방식으로 뒤따라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해양 슈트를 예로 들어볼게요. 예전엔 이걸 우리가 만들려고 해도 중국 기업이랑 노동력에서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한땀 한땀 수작업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중국과 국내 기업은 경쟁 자체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명조끼에 ICC 센서를 장착합니다. GPS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굉장히 새로운 시장이 되는 거죠. 우리나라가 또 그런 쪽은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측면에서 정부에서도 스포츠산업을 높은 잠재력을 지닌 시장으로 보고 있는 거죠. 국내 기업들이 이런 장점을 살린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제품을 팔 수 있다고 봅니다."
스포츠산업은 최근 정부가 미래의 성장 동력원으로 지정할 정도로 주목하는 분야다. 프로스포츠 활성화와 그에 따른 생활체육 인구의 증가가 어우러지면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부의 기대가 큰 분야인 만큼 박영옥 원장의 외부 활동도 다양해졌다. 그 중 하나가 대학 강의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을 보면서 박 원장은 생각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대다수 학생이 이미 뛰어난 직무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막상 취업하기까지는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한테 솔직하게 기존 기업에 취업하기는 바늘구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이쪽 일을 하고 싶으면 젊었을 때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줘요. 체육학과 학생들은 분명히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체육학과 조교와 볼링을 치러 갔는데 처음 잡는 볼링공이 제 손에 딱 맞도록 테이핑을 해주더라고요.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죠. 이런 것들은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단 아이디어만 나오면 나머지 다른 것들은 해당 분야 전공자를 찾아 협력하라는 거죠. 태권도의 근접센서를 예로 들자면 아이디어는 체육 현장에서 끌어오고 센서 만드는 기술 같은 건 공학 쪽 사람들과 협력하는 식으로 풀어 가면 되니까요."
최근 들어 스포츠산업이 관광산업 규모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취업 현장의 체감온도는 낮다. 고용과 성장의 선순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포츠 관련 일자리는 노동집약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고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직종이죠. 스포츠 대회를 하거나 개인 트레이너를 하거나 어쨌든 사람이 들어가야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개인적으론 지금 우리 사회 전체의 성장률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더 많은 고용이 일어날 수 있게 가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스포츠산업의 일자리 창출은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스포츠산업의 일자리는 스포츠산업의 성장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창출을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이 같은 분석은 20년 넘게 스포츠계에 몸담으며 스스로 절실히 느낀 점이기도 하다.
"스포츠에 대한 4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먼저 인간의 건강 측면에서 확실한 역할을 하죠. 두 번째로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한다는 겁니다. 다문화, 다인종, 다종교 등에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를 스포츠로 줄일 수 있죠. 대표적으로 북한과 통일됐을 때 가장 먼저 빛을 발할 수 있는 게 스포츠입니다. 세 번째는 교육의 기능이죠. 팀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면 반칙을 하지 않습니다. 팀 스포츠를 한 사람들은 반칙을 매우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죠. 이건 인류가 증명한 사실이에요. 미국의 경우 팀 스포츠를 정말 많이 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는 한 사람의 건전한 가치와 연결되는 기능을 하고요."
박 원장은 이러한 식견을 바탕으로 활약하며 2009년에 한국스포츠산업진흥협회 우수연구자상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는 2003년부터 활동한 한국스포츠사회학회에서 부회장을 맡으며 사회 안에서의 스포츠가 지닌 가치를 지속해서 찾고 있다.
"지금까지 17개국 정도를 돌아다녀 봤습니다. 외국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될 때 가장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게 같이 스포츠 하는 겁니다. 대부분 잘산다는 선진국들은 스포츠의 가치를 잘 이용하고 있어요. 스포츠를 누리고 맛보는 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스포츠라고 하면 엘리트 체육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주목하는 움직임들이 더욱 있어야 하며 그런 활동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좀 더 스포츠 가치를 전파해서 스포츠로 사람들이 소통하고 남을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장. 사진/스포츠개발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