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억제하자는 목표에 합의한 파리협정 채택을 전후로 금융투자기관들의 기후변화 관련 기업관여(Engagement)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더욱 강해지고 있다. 특히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비즈니스 모델로 하고 있는 산업군의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철회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주류 금융투자기관을 대표하는 JP모건은 지난 3월초 "탄광과 석탄화력 발전소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수 백 개의 투자기관들이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의 FTSE는 엑손 모빌, 리오 틴토 등 화석연료 기업을 배제하고 테슬라, 베스타스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기업을 추가한 녹색경제 인덱스를 지난 4월 말 선보이기도 했다.
전세계 금융투자기관이 파리협정 채택 이후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면서 특히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를 통한 기업관여를 늘리고 있다. 기후변화 적극 대응기업과 둔감한 기업 그리고 무관심 기업을 CDP 대응여부와 성과로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해외의 금융기관으로부터 CDP에 양질의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성과를 높이라는 요구를 받았다.
CDP는 기후변화 등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환경적 이슈에 대응하고자 하는 전세계 금융투자기관 주도의 국제적인 프로젝트이자 이를 수행하는 비영리기관의 명칭이다. 전세계 주요 기업들에게 전지구적인 문제인 기후변화와 물, 산림자원 등과 관련해 어떤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매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수집된 정보를 금융투자기관들이 투자나 보험, 대출 등에 활동하도록 하는 이니셔티브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대상으로 CDP Climate Change(기후변화)와 CDP Water(물)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 중 적지 않은 기업이 CDP 정보공개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글로벌적으로 진행되는 변화의 조류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보공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8년 동안 탄소정보공개 거부
CDP한국위원회(사무국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가 발간한 2014년도 CDP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높은 기업집단(그룹)은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기아차, 삼성, LG, GS, 롯데 등의 순이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 대상인 기업들의 배출량을 당시 목표관리제를 기준으로 주요 그룹사별 배출량 비중을 분석한 결과다. 이 비중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해당 기업집단의 위험 노출도와 책임성을 의미한다.
CDP한국위원회 김태한 연구원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업집단 간의 차이도 있지만 기업 집단내 각 기업별로 상당한 격차가 있다"며 "특히 기후변화에 상당한 책임성과 위험성이 있음에도 정보공개를 수 년 동안 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도 다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주요 기업집단별 그리고 기업집단 내의 CDP 정보공개 현황을 살펴보면, LG그룹은 2014년부터 CDP의 기후변화대응 관련 정보공개에서 독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정보공개대상에 포함된 10개 기업 모두가 응답했다. 특히 LG전자, LG유플러스, LG화학, LG이노텍은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삼성그룹은 16개 대상기업 중 12개가 공개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CDP 정보공개 대상기업 9개 모두가 배출권거래제나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 대상기업(이하 목표관리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후변화 관련 책임성이 상대적으로 큰 기업들이다. 그러나 5개 기업(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현대하이스코)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아자동차는 6년 이상이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기아차는 CDP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뿐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SK그룹도 CDP 정보공개 대상기업 10개 중 9개 기업이 배출권거래제나 목표관리제 대상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SKC, SK(주), SK가스는 모두 3년 이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관련해 친환경 이미지로 대외에 광고를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8년 동안 정보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CDP를 통한 꾸준한 정보공개로 탄소경영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만 공개하고 있을 뿐 포스코켐텍, 포스코ICT, 대우인터내셔널은 3년 이상 무응답이다. 한국전력그룹은 한전을 비롯해 비상장사인 관계로 기후변화 정보공개 대상 기업은 아니지만 동서발전이 자발적으로 공개를 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반면 대상기업인 한전KPS나 한전기술은 3년 이상 대응하지 않고 있다. 한전그룹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하면 발전자회사들이 동서발전과 같은 책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외에 배출권거래제 대상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업 중 정보공개를 하지 않은 기업이 다수인 기업집단은 롯데, 금호아시아나, OCI, 영풍, 세아, 신세계 등이다.
반면 코웨이는 배출권거래제나 목표관리제 대상기업이 아니지만 CDP를 통해 자사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과 성과를 전세계에 알라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또 삼성물산, KT, LG전자, 신한금융지주, 현대건설은 탁월한 성과로 탄소경영 아너스클럽에 편입된 바 있는 모범적인 기업들이다.
포스코와 발전사들 물 책임성 부족
지난해 정식으로 국내에 시작된 물정보공개프로젝트(CDP Water)에서는 46개 대상기업 중 15개가 물과 관련한 지배구조와 전략, 목표, 위험과 기회, 용수사용량 등의 정보를 공개했다. 코웨이와 CJ제일제당은 이 프로젝트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성과를 거두었다.
용수사용량이 많은 산업군인 유틸리티에서는 한국지역난방공사만이 유일하게 공개했고, 원자재 산업군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스코는 응답하지 않아 책임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LG화학, 현대제철, 롯데케미칼, 한국타이어, LG전자, 삼성전자, 삼성전기,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현대건설, 아모레퍼시픽, 오리온은 정보를 공개했다.
전세계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후변화와 물 관련 정보공개 마감은 6월 30일이다. 파리협정 채택으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투자 패러다임을 급속히 바꾸고 있고, 해외기업들은 탄소경영과 물 경영에 박차를 가하며 CDP 정보공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올해 CDP 정보공개 참여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런 변화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협정 채택으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투자 패러다임을 급속히 바꾸고 있고, 해외기업들은 탄소경영과 물 경영에 박차를 가하며 CDP 정보공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열렸던 CDP2015 시상식. 사진/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