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홍상수·김민희 스캔들, 사회재판감인가

입력 : 2016-06-28 오전 6:00:00
홍상수 감독과 영화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이 터진 지난 주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소란스러웠다. 언론은 연일 이들의 연애를 보도하며 '사회재판의 기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는 여론을 부채질했고, 사람들은 집단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비난을 쏟아냈다. 두 사람이 특별히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애매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도덕적이다’,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도덕적 기준은 시대나 사회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는 탈근대성을 특징으로 한다. 탈근대성이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0세기 말 서구 사회에 등장한 것으로 사회제도의 해체를 가리킨다. 개인과 집단 아이덴티티의 약화를 가져왔고 절대적 자유주의적 쾌락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초점이 개인에게 맞춰지는 가치관의 변화를 초래했다. 국가, 종교, 가족과 같은 전통적 구조와 지표가 소멸되고 세상의 환멸을 뛰어넘고자 하는 새로운 풍조가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도 언젠가부터 파도처럼 밀려들어오고 있다.
 
이렇듯 한국에 탈근대적 징후들이 출현하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홍 감독과 김씨의 스캔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스캔들은 어디까지나 사생활로 봐야지 사회적 재판을 받아야 할 성질의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법 규범을 위반한 것이 아닌 이상 당사자 간의 문제이지 사회가 소란스럽게 개입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공인들의 연애마저 사생활로 간주하고 사회재판을 삼간다. 지난 2013년 12월 프랑스 연예주간지 클로제르는 올랑드 대통령에게 숨겨진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연말을 새 애인인 여배우 쥘리 가이에와 함께 보내려고 스쿠터를 타고 찾아가는 올랑드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자 프랑스의 다른 언론과 외신들도 이구동성으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여성 편력은 만만치 않다. 세골렌 르와얄 현 환경부 장관과 23년간 동거해 4명의 자녀를 두었고, 2004년부터는 파리마치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기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했다. 2012년 6월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궁에 입성할 때 트리에르바일레르를 동반해 안방주인으로 삼았는데 이번에 다른 연인이 생긴 터라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랑스인들은 올랑드 대통령의 연애사건에 흥분하거나 크게 노여워하지 않았다. 프랑스 일요신문(JDD)이 올랑드-가이에 사건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가 대통령의 사랑을 개인적인 일이라고 답했다. 프랑스인들은 대통령도 다른 프랑스인처럼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고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이에와의 스캔들이 올랑드 대통령의 이미지에 그 어떤 영향도 입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4%가 클로제르의 보도 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렇듯 프랑스인 대다수는 대통령의 연애를 사생활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마다 각기 문화가 다르니 프랑스가 옳고 한국이 그르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홍 감독과 김씨의 사생활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간주해 미디어나 여론이 뭇매를 때리는 태도는 현대국가의 세련된 모습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법보다 도덕이 우선인 중세사회 같이 느껴져 어쩐지 오싹하다. 도덕에 충실하면 무죄, 그에 반하면 극형이라고 하는 사회는 현대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룰이 불분명한 중세의 카오스 사회와 진배없다. 그 시대의 도덕적 기준으로 헤아려 행동하는 사회는 좋게 말하면 정서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비이성적이다.
 
정보통신기술(IT)의 선두를 달리는 한국이 이러한 전근대적 요소를 청산하고 보다 세련된 민주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언론과 여론의 진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중세 봉건시대가 아닌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유명인들의 연애 사건에 온 나라가 개입해 북새통을 떨기보다,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춰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성숙하고 침착한 민주문화를 형성한다면 이보다 더 생산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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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