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호석기자] 산은과의 1조원 지원 협상은 이제 끝났다는 닉 라일리 GM해외사업부문 사장의 언급은 조기 경영정상화에 대한 자신감인 동시에 결국엔 산은을 끌어들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인 것으로 보인다.
라일리 사장은 29일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총회에서 작심한 듯 산은과의 협상종료를 선언하고, 산은이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몇가지 요구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일단 산은측은 "지금 말할수 있는 내용은 없다"면서 "바로바로 답변을 내놓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GM측이 갑작스레 이렇게 단호하게 나온데는 정말 자금사정이 나아졌고 GM대우의 경영정상화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화진 신영증권 선임연구원은 "GM대우는 지금도 계속 돈을 벌고 있는 회사"라고 전제하면서 "GM이 파산하면서 GM글로벌쪽에서 받지 못한 채권들이 최근 상당히 회수되고 있으며 내수에서도 마티즈와 라세티 모델이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신차개발, 라인증설 등 크게 투자할 돈은 없지만, 현상유지 수준의 운영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다만 만기채권의 회수 압박이 문제인데 이는 라일리 사장이 밝혔듯 산은의 1조원 지원여부와 별개인 또다른 협상 문제"라고 설명했다.
반면 단기유동성은 확보됐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성장을 위한 신규투자 여력이 없어, 지금 상태에서 완전한 정상화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향후 수출전망, 내수에서의 취약한 경쟁력, 신차출시 계획 불투명, 원화환율 문제 등으로 GM대우가 위기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예상보다 많은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GM대우의 유동성은 중장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 단기적 운영은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내다볼 때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근본적인 위기탈출과 정상화는 힘들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라일리 사장이 갑작스레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 모든 패를 다 보여주고 "할만큼은 했으니 이제 우리도 모른다"는 식의 벼랑끝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에 GM이 혼자 내는 4912억원 정도의 유상증자금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했다면 왜 프리츠 헨더슨 GM CEO까지 한국에 날아와서 수차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까지 만나 지원을 요청했겠냐는 것이다.
GM으로서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와서 산은을 압박해보고 안되면 정치적으로 풀어보려고 까지 했지만 결국 모든게 허사가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헨더슨 방한 이후 지엠과 지엠대우는 고심 끝에 증자액을 늘려 다시 한번 산은에 성의를 보였지만, 이 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협상 종료 선언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우리끼리 해보는데 망해도 할수 없다"는 취지의 시그널을 던진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많다.
지엠측이 별도 기자회견 등 공식적 방법이 아니라 라일리 사장이 회사 외적 업무로 한국에 오는 기회를 활용해 툭 던지는 식으로 한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GM은 산은이 GM대우에 대한 채권을 출자전환한 뒤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안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지고, GM대우를 시장에 팔려고 해도 인수처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잘알고 있다.
또 이번 협상종료 선언 뿐만 아니라 산은과의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여러가지 행동들을 감안할때, 마지막에 가서는 산은이 적정한 수준에서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게 분명해 보인다.
결국 라일리 사장의 협상종료 선언에도 불구하고, GM대우를 사이에 둔 GM과 산은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식으로 논의 테이블에 앉아 벌인 앞서의 협상이 신사적인 1차전이었다면, 이젠 벼랑끝을 향해가는 2차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뉴스토마토 이호석 기자 aris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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