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부산행' 연상호 감독 "'악'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파생된다"

입력 : 2016-08-02 오후 9:32:56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좀비 영화에 도전한 연상호 감독을 향한 우려는 적지 않았다. 국내 최초 좀비 장편영화일 뿐만 아니라 첫 실사 영화 데뷔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연 '부산행'2016년 여름 극장가를 독식하고 있다. 720일 개봉 이후 약 12일 동안 875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하루에도 30만 이상이 이 영화를 찾고 있다. 무난하게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상명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밝다는 편견을 깬 영화 '돼지의 왕(2011)'의 연출자로 주목을 받았다. 어린이용 또는 가족용으로 치부되던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위 '답정너'의 극단적 비극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사이비(2013)'에서도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조명하며 사회적인 문제에 일침을 가했다. 좀비 영화인 '부산행'에서도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장 논리와 계급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곳곳에 배치돼있다.
 
영화를 통해 어둡고 송곳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연 감독을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연 감독은 "'부산행'을 통해 악의 일상성을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부산행'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영화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사진/NEW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각각의 메시지가 조화롭다는 점이었다. 이기적인 한 인간의 성장과 정부의 무능, 사랑과 의리 등 보편적인 감정선과 절대악의 파멸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적절히 녹아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그릇이 넘치지 않게 담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첫 상업영화이기도 하고 '서울역'이 있었다. '서울역'하고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서사 중심보다는 액션 중심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 처음에 기획안을 가지고 갔는데, 투자배급사에서 인물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군상 극이 되는데 자칫 산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파격적인 설정을 했다. 예를 들면 주인공 석우(공유 분)의 캐릭터의 색깔을 죽이고 전사를 넣는 것이다. 대신 다른 캐릭터는 전사 없이, 색깔을 많이 넣었다. 그렇게 밸런스를 맞췄는데, 이건 파격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이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데, 캐릭터의 매력은 좀 떨어진다. 배우들이 기피할 줄 알았다. 그런 점에서 공유 배우를 높이 생각한다. 돋보이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공유는 상관없다고 하더라. 그리고 자신을 절제하는 연기를 했다. 공유가 아니었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 너무 공유에게 공을 돌리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릇이 넘치지 않게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건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비결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주연배우가 그렇게 결정하기가 일단 쉽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설계를 했을 때 조금 정신이 없었고, 포인트를 잡기도 어려웠다. 한정된 공간에서 이런 저런 걸 다 보여주기가 쉽진 않았다. 현장에서 많이 판단했다. 날리기도 많이 날리고 추가 신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런닝타임 체크를 만이 했다. 쉬는 날에도 계속 편집을 하며 고민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뭐가 들어가고 빠지는지가 중요해서 체크를 많이 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많이 남는 장면은 15번 칸에서의 대치 신이다. 이 영화가 많은 걸 얘기하고 있지만, 혹시 이 시퀀스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극한의 공포에서 나오는 무서운 군중심리를 표현하고 또 급작스럽게 권력관계도 형성이 되는 장면이다.
 
맞다. 그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용석(김의성 분)'나가라'고 하는데 석우를 비롯한 인물들이 그 칸에서 나가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용석이 총이라도 있지 않아야 할까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이 오니 자연스럽더라. 용석도 그렇고 승무원 역의 장혁진 배우도 그렇고, 그 칸에 있는 군중들도 연기를 잘해줬다. 공포에서 혐오로 가는 감정을 꼭 표현해달라고 했다.
 
사실 뭐든지 한 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뻔뻔해지지 않나. 급박한 상황에 용석이 악인이 되는데, 그 악을 만들어주는 지지 세력은 평범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없었다면 일반적인 장르 영화에 그칠 것 같았다. '악의 일상성'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악이 엄청난 무언가에서 파생된다기 보다는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서 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중요했다.
 
- 영화 내에서 성장 논리를 대변하는 인물이 석우와 용석이다. 석우는 이타적인 면을 갖게 되고, 용석은 끝까지 경쟁 논리로 살아남는다. 결국 그 둘이 다투다가 죽는다. 비슷한 지점의 두 인물이 양갈래로 가서 다시 만났다가 파멸을 맞게 되는 부분도 신선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사고를 지니고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 두 캐릭터가 아주 우연한 선택에서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주 우연에 가까운 일 때문에 변화한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에는 두 사람이 만나고 자멸을 하는데, 그 두 사람의 세대가 자멸하기 바랐다.
 
- 왜 그런 생각을 한 건가.
 
우리나라에는 여러 세대가 있다. 위로 올라가면 6.25을 두고 이데올로기가 이슈인 세대가 있고, 석우와 용석처럼 성장 중심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있다. 영화에는 철 모르는 10대도 있다. 10대들이 누구로 인해 희생되는지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을 하는 영화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전 세계적으로 다음 세대의 이슈는 무엇이냐는 토론이 많다고 한다. 수안이라는 캐릭터가 장치적으로 활용된 평면적인 캐릭터인데, 다음 세대는 수안 같은 사람들이 사는 시대였으면 했다.
 
그래서 공들인 게 마지막 수안의 얼굴이었다.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좀 다부진 느낌에서 나오는 눈물이길 바랐다.
 
영화 '부산행'에 출연한 정유미와 김수안. 사진/NEW
 
- 엔딩을 영화 '위플래쉬'처럼 툭 자르면서 끝낸 이유는 뭔가. '끝까지 살아난 두 사람이 꼭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는 비극적인 의미를 담은 건가.
 
아니다. 내 응원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다. 너무 확실하게 감정을 담으면 너무 뻔히 보이지 않나.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엔딩인데, 일종의 의도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거 같다. 열차에서 생긴 사건에 대한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낼 것이며, 좀비들에게서 과연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비극을 겪은 분들 중에 의외로 충격을 받는 지점이 배고픔을 느낄 때라고 한다. 너무 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배가 고프고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냐며 놀랐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당연한 건데 말이다.
 
뭐가 됐든 간에 잘 살길 바란다. 그 둘은 나약하지만 당찬 사람들이다. 너무 외로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둘이 아니다. 뱃 속의 아이까지 셋이다.
 
- 공유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연기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나는 개인적으로 석우를 감정 표현이 좀더 센 인물로 그려놨었다. 첫 촬영을 공유와 했는데 특유의 자연스럽고 절제된 연기를 하더라. 그 장면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절제했고, 그 덕분에 작품이 더 훌륭해진 것 같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태도도 고맙다. 먼저 시간을 잡아서 배우들하고 시간을 내서 밥도 해먹고 술도 먹는 것 같았다. 연출부 스태프들 술자리에도 참여하고, 연출부 스태프 여자 친구와 통화도 하고 연애 상담도 해주는 거 같더라. 배우가 까다로운 부분도 있지 않나. 그런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공유는 정말 소탈하게 작품에 임해줬다.
 
'부산행'에 출연한 공유와 마동석. 사진/NEW
 
- 공유도 공유지만 마동석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 같다. 캐릭터가 정말 멋있고, 기억에 남는다.
 
마동석처럼 귀여우면서도 마초적인 성향의 배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없을 것 같다. 마동석이 아닌 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 과연 누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부산행' 찍을 때는 살이 좀더 불어난 거 같았다. 덩치도 더 커보여서 좀비와 싸우는데도 비슷한 힘의 균형을 보여준 것 같다.
 
- 그럼에도 이 영화의 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마동석이 등장하는 부분 중에 있다. 높은 빌딩 옥상에서 떨어져도 좀비들이 엄청 날뛰는데, 마동석한테 얻어맞은 좀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건 마동석의 주먹이 중력보다 세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최소 영화 내에 중력보다 마동석의 주먹이 세다는 설명이 필요한 것 아닌가.
 
마동석의 팔뚝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하다.
 
- 김의성이 놀라웠다. ‘절대 악이면서도 서민적인 페이소스가 있다.
 
김의성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연기를 잘해줬고, 그냥 잘 할 줄 알았다. 사실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의성 선배께 많은 설명을 못해줬다. 미안하게 생각만 했지, 딱히 말은 못했는데 다 이해해주고 계시더라.
 
그리고 예전에 '사이비'에서 한 번 같이 작업을 했었다. 당시 권해효 선배가 맡았던 역할이 엄청난 악역이었는데, 그걸 탐내하셨다. 이번에 '부산행' 캐스팅 때 그 역할보다 더 센 악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악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으신 분이다. 그래서 더 잘 할 줄 알았고, 잘해줬다.
 
- 김의성 페이스북에 보면 중간에 갑작스럽게 고함을 치는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네티즌이 있다. 그 글에 김의성은 "감독이 시켰다"고 답글을 남겼다. 정말 그렇게 시킨 건가.
 
그 글을 봤다. 내가 그렇게 요구했다. 현장에서 의성 선배는 좀 더 자연스럽게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달랐다. 사람들을 보면 꾹꾹 참다가 갑자기 분통을 터뜨리고는 한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연기도 좋지만, 용석 역할에는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과한 감정을 통해 캐릭터를 설정하고자 했다.
 
- 정유미 역시 힘이 느껴졌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유미 배우가 가진 당찬 힘이 있다. 마동석이란 배우의 이미지를 휘어잡을 수 있어야 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미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유미 개인이 가진 당찬 힘이 성경이란 인물에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특별한 설정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정유미의 내면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 영화 전반적으로 세련미가 넘친다. 빠르고 경쾌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신파 장면이 나온다. 마치 패션 피플이 옷을 정말 잘 입었는데, 되도 않는 검은 양말을 올려 신은 느낌이다. 꼭 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나.
 
나 자체가 그런 양말 올려 신는 걸 좋아한다. 그게 성격이랑 맞는 거 같다. 소위 촌스러운 건데 촌스러운 걸 좋아한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라,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에서도 그랬다. 그 때는 주로 주제를 대사로 풀어냈다. 촌스러운 방식인데 그게 더 좋았다.
 
그게 오히려 더 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런 촌스러운 지점을 애매하게 그려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어중간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시간도 꽤 길게 담았다. 그리고 좀비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들도 있다. 그들을 위한 보편적인 감수성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 공유가 말하길 감독이 첫 만남부터 자신감만 넘쳤다고 한다. 사실 우려가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이 있을 수 있나.
 
자신감이 있었던 척을 한 거다. 나 자체가 엄숙하고 진지한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 있다. 실없는 농담을 끊임없이 한다. 공유가 최근에는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실 없는 모습을 처음에 보여줬다.
 
- 실없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전작이나 이번 영화 모두 깊이가 남다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시선도 날카롭다. 호기심도 많은 것 같다.
 
분위기 자체가 실없는 건 맞는데, 인간에 대한 관심은 많다. 살다보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기 모습을 볼 때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때도 있다. 꽤 재밌어 했고, 늘 관찰했다. 일종의 공감 능력일 수 있다.
 
연상호 감독. 사진/NEW
 
- 이번이 실사영화로는 처음인데, 어려웠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이 있나.
 
실없는 성격과 연관이 되는데, 배우들이랑 진지하게 영화 얘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감독이 배우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부산행' 얘기를 할 수도 있는데 못하겠더라.
 
그렇게 되면 캐릭터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는데, 반면 진지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좀 기피했다. 그럼에도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 이해를 정말 잘해주셨다.
 
-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818일에 개봉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히려 '서울역'을 보고 나면 '부산행'에 대한 아쉬운 점이 더 나올 수도 있다. 이번에 영화를 만들고 나서 사람들의 다양한 해석에 재미를 느꼈다. 그 때도 이번처럼 재밌는 해석을 들었으면 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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